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유목민적 사고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유목민적 사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15 15:58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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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유목민적 사고



산속의 새 노래 들으며 받는
박사 학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꽃 노래 부르며 구름으로 취득하는
학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길모퉁이에서 펄럭거리는
박사 학위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산속에서 벌치기 하나로만
사십여 년 외길인생을 걸어온 나에게도
박사 학위 하나쯤은 받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벌들과 함께 꿀을 따서 완성한
표절 한 자 없는 나의 꿀벌 박사 논문
꽃피는 봄날,
지도교수인 햇살과 바람이
나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이종만의 ‘양봉 일지'(부제:박사학위))

오늘은 이종만 시인의 ‘양봉 일지’를 소개한다. 그는 통영 사량도 출신으로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 ‘양봉 일지’는 고성 상리에서 '벌'을 치고 있는 그의 연작 시이다. 이종만 시인은 제24회 ‘천상병詩문학상’을 수상했다. 천상병 시인의 따스함과 순수성을 그에게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원양어선을 타다가 '벌'을 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파니샤드', '마라래빠의 십만송' 등을 읽으면서 시를 접하게 되었고, 노력 끝에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꽃 따라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런 유목민적 체험이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꽃'과 '햇살과 바람"이 버무려준 ‘양봉일지’ 시인의 말에서 “나는 시를 따라간 것이 아니었다. 시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벌'과 자연이 불러준 대로 그저 받아적은 것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현상들을 아무런 기교 없이 받아 쓴 작품이다. 어려운 문장이 없어 독자들이 다가서기 비교적 편하다. 한여름 꿀벌의 천적인 흑동벌을 잡듯이 퇴고하여 그의 작품엔 군더더기 말이 거의 없다.

‘새 노래 들으며 받는/박사 학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꽃노래 부르며 구름으로 취득하는/학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벌 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때론 밤하늘의 별을 보고 말을 걸고, 새소리를 들으며 그는 상상에 접어든다. 자연이 '지도교수'인 셈이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박사' 안 하는 게 '박사'다. 어딜 가나 표절 시비가 있고 짝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악보다 선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

그는 사십 년 넘게 '벌'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표절 한 자 없는 나의 꿀벌 박사 논문’에서 그의 순수한 마음과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햇살과 바람’이 수여한 ‘박사’ 이종만은 가끔 산속에서 외톨이가 되어 헤매기도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행간을 관통하고 있다. 건강한 '벌치기'는 정년이 없어 부러울 따름이다. 시인의 작품이 순수성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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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강 2023-01-16 12:24:13
박우담 회장님 ! 시가 흐르고 마르지 않는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건강하세요~~ 이종만 시인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