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소믈리에와 맛있는 인생
북 소믈리에와 맛있는 인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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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경남대학교 도서관 부관장

소믈리에(Sommelier)는 고객들에게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고 서빙(Serving)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Sommelier’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레스토랑의 포도주 담당 웨이터’라고 나와 있고, 불어사전에는 ‘큰 집, 호텔, 기숙사 따위의 식료품 담당자 또는 카페, 요리점 따위의 술 담당 보이’라고 되어 있다. 그 어원은 고대 불어인 ‘Bete de Somme’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영어로 ‘Beast of Burden’, 즉 짐을 나르는 동물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소믈리에를 ‘소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우스갯소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도서 서평이나 소개 글에 ‘북 소믈리에 한마디’란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데, 소믈리에의 의미를 새겨보면 북 소믈리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계의 최고 고수라 일컫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책읽는 사람들(A Reader on Reading)’에서 ‘읽는다는 행위는 텍스트의 재구성, 즉 작가의 경험과 인식을 토대로 독자가 자기언어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더욱 강조되고 있는 독서의 중요성, 그 역설적 현상은 정보보다는 사유(思惟)의 깊이가 더 크고 넓은 점, 즉 독서가 지닌 사유의 힘과 광활한 지적 영토에 대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필요할 때 마다 주워 모은 짧은 정보와 지식들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 같은 것이지만 독서는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재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북 소믈리에는 개인의 독서활동을 도와주고 소셜 리딩을 통한 지식의 공유와 확대 재생산을 주도해 나가는 지식과 문화의 전도사라고 할 수 있다.

매 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북 소믈리에 콘서트’라는 행사가 있다. 북 소믈리에 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있는 이 행사는 기존의 지식나눔을 주제로 한 콘서트와 달리 문화나눔을 주제로 한 신개념 북 콘서트란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행사는 단순히 저자의 책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력있는 예술인들과 베스트셀러 저자가 함께 모여 각자의 재능기부를 통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야기 아티스트, 감성 디자이너, 역사인문학 스토리텔러, 스토리 디렉터, 소셜미디어 디렉터 등 생소한 직종의 사람들도 흥미롭다. 독서를 통하여 인생의 맛을 더하고자 하는 사회적 요구가 서서히 증가함에 따라 북 소믈리에, 북 칼럼리스트, 독서 에세이스트와 같이 독서활동을 조직하고 리드하는 전문가들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들이 독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책과 지식을 찾아 권하고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훨씬 맛있어 질 것이다.

독서 호흡이 짧은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회일반의 독서활동은 ‘독서를 통한 행복 추구와 힐링’의 수준까지 와 있는 데 정작 독서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는 인문학 서적을 찾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직을 위한 실용서나 수험서에만 매달려 있다. 대학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취업지상주의와 경쟁 일변도의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학 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독서활동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소셜 리딩 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상아탑에도 일회용 지식이나 취업용 정보 대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 깊은 사유(思惟)가 자리 잡는 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신정과 구정을 다 지나 본격적으로 계사년 새 해 결심들을 하나씩 실천할 때다. 작년에 독서의 해는 지나갔지만 변함없이 책을 가까이 하고 그 속에서 맛있는 인생의 레시피를 찾아내어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맛있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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