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의리라는 것
아침을 열며-의리라는 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25 15: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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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
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의리라는 것

깡패나 도둑놈, 비리 연루자가 형님, 아우 하면서 사회에 암적 범죄를 저지르는 그릇된 의리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멀리는 독립운동을 하던 우국지사에서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목숨까지 내놓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한 의리(義理)이다. 여기에 전우애를 빼놓을 수가 없다. 빗발치는 탄우속에 고립된 전우를 구할 때면 앞뒤 상황을 재고 따지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뛰어들다가 목숨을 잃는다. 다음 주자가 또 뛰어든다. 전우를 홀로 두지 않는게 바로 전우애이다. 6.25와 월남전에서 수 많은 전우가 산화했다. 두어 달 전 KBS 방송에서 월남전 양민학살 보도가 있었고, 당시 일곱 살이었다는 현지인과 좌파뉴스 주재원, 그리고 월남전 참전자라는 작자가 증언했다고 했는데, 상당수의 참전용사가 방송국에 몰려가 명예훼손에 대해 항의를 했다고도 전했다.

정규 월맹군도 전략상, 그리고 지방 게릴라 베트콩은 군복 아닌 민간인 복장을 했으며, 그들은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에서부터 저승 문턱의 노인들까지 게릴라 조직원으로 활용했었다. 대민사업으로 학교나 공회당, 교량 건설을 해 주는 현장에 또는 쌀이나 생활물자를 나눠주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양민인양 와서는 폭탄을-치마 속이나 음식 바구니에 감추어서- 터뜨리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는데, 일부 불순 의도의 말만 듣고 공영방송이 32만 참전용사와 이백만 가족들의 명예를 짓밟았음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월남 참전용사의 헌신으로 (대략 67~80억 달러-지금 환율로는 수십조 추정) 대한민국의 오늘이 번영되었음에도 말이다. 더구나 참전용사는 전투수당도 못 받고 있다. 당시 장사병 1인당 미정부에서 지불한 금액은 (연간) 5천 불의 1/10인 5백 불을 평균으로 주고 9/10는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했다는데, 필자도 들은 이야기일 뿐 확실치는 않다. 청춘과 목숨을 조국에 내어주고 인생이 숱하게 망가져 버렸는데, 배신을 때린 인간 말종의 말을 그대로 보도하는 좌파 행태를 불지르고 싶다만... 극단의 이기심이 난무하는 세태이다 보니 의리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픈 기억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다. 복무 후 귀국시 장교들은 A박스, 병사들은 B박스에 현지 물품을 채워왔다. 돈이 있는 장교들은 PX에서 미제 TV 등 좋은 것으로 큰 박스(A)를 채웠지만, 필자같은 사병은 작은 박스(B)에 탄피나 씨레이션(통조림, 비스켓, 커피), 카메라 1개쯤이 전부였는데, 탄피는 팔면 당시 2~30만 원쯤 제법 돈이 되었다.

그런데 먼저 귀국했던 죽마고우 전우가 처분해 준다더니 날라버렸다. 지금껏 연락이 없다. 70년대 말 사업이 잘될 때 친목 모임에서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이 잘 지냈던 동종업자에게 큰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이고 말았다. 그 돈을 빌려준 두 달 후 필자는 희귀병으로 쓰러졌고, 의식불명의 십수 년을 보내었으며, 친지도 지인도 모두 멀어지고 말았다. 한동안 고향에서 죽은 듯 살다가 마산으로 온지도 십여 년이 넘었는데, 어쩌다 고향에 가면 변함없이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의리의 세 사람, 바로 진주보훈회관의 조현일 상군지회장, 김세권 유족지회장, 임옥이 미망인지회장인데 진주에서 마음과 몸이 남들보다 배나 아픈 보훈 가족에게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는 의리 있는 사람들이다. 삼십여년 전 유공자로서 인사를 나눈 후 산골에 우거하면서 한결같은 도움을 받았는데 마산으로 이주한 후에도 변함이 없다. 함께 싸우던 전우가 숨져도 낙심치 않고 초인적 용기로 임무를 완수하며 영광을 조국에 바치는 에나사나이 의리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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