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거짓말 하는 사람의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
칼럼-거짓말 하는 사람의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30 15:5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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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거짓말 하는 사람의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조선시대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절친한 사이이었던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어느 날 뒷간을 다녀와서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에게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도깨비가 음낭을 잡아당기며 ‘장차 정승을 하리라’고 말했네. 그러니 자네도 그곳에 가보게.” 이 말에 한음도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니, 역시 도깨비가 음낭을 노끈에 매어 잡아당겼다. 억지로 아픔을 참고 견디자 이렇게 말했다. “정승을 할 수 있겠다.” 훗날에야 오성이 장난한 것임을 알았다.

하루는 한음이 전염병으로 몰살당한 집에 들러 시체를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누가 겁이 많은지를 시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오성이 혼자 그 집에 가서 차분히 시체를 더듬는데 갑자기 시체가 벌떡 일어나 오성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깜짝 놀란 오성은 도망을 갔다. 이 또한 한음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한음의 부인과 오성은 남녀지간이었지만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하루는 오성이 한음에게 부인과 정을 통했다면서 거짓말을 했다. 노발대발하는 한음을 보고 오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훗날 오성이 한음 집에 찾아갔는데 부인이 인절미를 내어놓았다. 오성이 한입 베어 물자 그 속엔 똥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한음 부인이 말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의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

▶‘이게 뭡니까?’ 유행어 남긴 자유인 김동길(金東吉:1928~2022) 교수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추모식을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연세대학교병원에 기증하여 의과대학생들의 교육에 쓰여 지기를 바란다.’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은 연세대에 기증됐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분단 후 월남하여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 연세대로 돌아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군부독재 시절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대학에서 해직됐다. 이내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복직했지만,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며 다시 한 번 해직됐다. 다시 복직되어 연세대학교 부총장·무소속 국회의원(14대)·저술가이며 방송인 겸 시사평론가로 ‘백년의 사람들’·‘김동길 인물 한국 현대사’를 남겼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2년 창당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서울 강남 갑)이 되었을 때는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말년에는 보수 논객으로 활동했다. 방송과 언론 기고 등으로 논평을 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 등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논평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고인의 제자로 임종을 지켜본 김동건 아나운서는 “평생 자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오시며 귀감이 되셨고, 언제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다는 사랑과 진심, 의협심과 정의감을 보여 주신 분이며 사람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해지기 마련인데, 박사님은 약자에게 다정했으며 강자의 잘못 앞에서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고 스승을 회상했다.

그는 강골이었다. 대학 때 도봉산으로 단체 친목회를 갔다가 깡패들을 만났다. “가진 것을 내 놓아라”고 협박당했다. 김 교수 혼자 다 때려 눕혔다. 당시 유일한 여학생이던 고(故) 심차선 교수의 생전 증언이다. 그런 분이 하루 한 끼만 드셨다. 자택에서 식사를 함께 해 보고 의문이 풀렸다. 그릇 크기가 대단했고 양도 상당했다. 비상한 기억력도 유명했다. 시 300수를 외웠다고 한다. 김 교수는 “키를 눌렀는데 시가 안 나온다. 그때가 인생 끝나는 때”라고 했다.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고 종종 자택에서 냉면 모임을 했다. 많은 식객이 신세를 졌다. 그 가운데 부하까지 몰고 와 냉면을 가장 많이 먹고 간 사람은 5공 때 김 교수를 핍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50여 명이 100그릇 넘게 먹고 빈대떡까지 싸갔다고 한다.

한음의 부인과 김동길 교수가 살아계셨다면… 요즘 거짓말하는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을 보고 “거짓말하는 사람의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 “이게 뭡니까?”,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 고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에이 퇴퇴…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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