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아침을 열며-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31 16: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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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박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구정 연휴에 친척들이 다녀가고 집안을 정리하다 한 분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간 책이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이 나서 바로 전화를 드리니 이번에 필요할 것 같아 가져간 책인데, 잊어버리고 두고 갔다고 박장대소를 하셨다. 연휴에 아내를 위하여 일가친척집 다녀가시느라 운전도 하고, 힘드셔서 한숨 주무시고 싶었을텐데 책을 왜 준비해 오셨냐고 여쭈어 보았다.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형제가 많은 가족에 시집을 와서 본의 아니게 장남은 아니지만 본인(남편)의 집에서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음식 등 모든 것을 아내가 도맡아 손님맞이를 묵묵하게 해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자라 분가를 하니 오는 손님도 적어지고, 이제는 아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함께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아는 일가친척은 본인(남편)의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왕래가 없어 이야기에 끼어들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고, 눈치 없이 구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아내에 대한 배려로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과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도록 한쪽에서 차 한잔 하면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이라 하였다. 잊고 가신 것 보니, 이 책을 준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계시다가 가신 것으로 해석되어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제가 먼저 읽어 보고 우편으로 보내도 되겠냐고 양해를 부탁드리니 얼마든지 편안하게 읽고 보내주거나, 올해 추석 때도 만날거니 그때 주어도 된다고 하여 그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지식의 착각(필립 페른백, 스티븐 슬로먼, 세종서적, 2018)으로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부제목이 있는 책이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내가 옳다고 입증하려는 원초적인 본능이 있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지하고도 사과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면 개인과 집단 모두를 똑똑하게 만든다. 의견의 대립은 자신의 두뇌 깊숙한 곳의 닿지 않는 보물같은 정보가 나타날수도 있고, 잠들어 있던 통찰이 깨어날 수도 있다.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다양성이라고 한다. 다양성이 가져오는 에너지가 창의성과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신의 성장과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디어는 때로는 많은 논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논쟁으로 검증받고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과 표현을 받아들일 때 자신이 성장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한다. 대립의 상황을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틀리다고 생각하며 적의를 가지지 않고, 위협이라 생각하고 피하지 않으며, 때로는 져줄 수도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져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한순간 져주는 것 보다 져주게 되면 추후 생각 없는 사람들이 배려 없이 다가오는 잘못된 태도가 용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한순간만 져주면, 어느 순간 타인이 나를 깊이 신뢰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지혜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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