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영주 칼럼- 비나이다. 비나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2 15: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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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비나이다. 비나이다.

상원인 정월 대보름날에는 1년간의 세시풍속의 1/5정도가 몰려 있다.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활력을 보충한다. 마을에서는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횃불 돌리기, 달 불이, 집 불이, 소밥주기, 닭 울음 점, 척사대회 등 흥겹고 신명나는 한마당이 펼쳐진다.

“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위에 모여서...” 겨우내 애지중지하던 연에 생년월일, 이름을 적고 하늘 높이 날려 줄을 끊어 버려 ‘송액영복(送厄迎福)’을 거행한다. “달아 높이 곰 돋아사. 어긔야 머리 곰 비치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가장 오래된 한글가사인 정읍사(井邑詞)의 일부이다. 광명체인 대보름달에게 밤길 가는 남편의 안녕을 비는 백제아낙의 간절한 기도이다. 가사의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처럼 어김없이 우리체질의 노래임을 아름답게 증명하고 있다.

‘빌다.’라는 행위는 ‘빛나게, 비추는’ 행위이다. 두 손 모아 용서를 빌면 어둡던 마음이 빛나고 두 손 모아 병이 낫기를 빌면 밝은 기운이 빛처럼 전달된다.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과 시집간 딸과 시험 준비를 하는 식구들의 안녕과 성공을 위해 빌고 또 비셨다.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비손 하신다. 여기에는 우리겨레의 과학적 지혜가 축적되어있다. 석 달 열흘의 기도를 위해 어머니가 일어나시는 인시(새벽 03시~05시)는 인체의 순수한 에너지가 각성되는 때이다. 우물물은 고요하고 서늘한 밤 동안 육각수로 복원되어 순수한 에너지를 가장 많이 머금은 생명수가 된다. 어머니가 긷는 우물물이 바로 ‘물의 으뜸 정한수’이다. 정한수의 물맛은 달며 독이 없어 술이나 식초를 담가 두면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정한수로 목욕재계를 하여 기의 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흰 그릇에 담아 장독대위에 올려놓으신다. 식구를 위한 음식이 익어가는 장독대는 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이다. 주변에는 봉숭아를 심어 뱀과 해충이 범접하지 못하는 신령스러운 장소이다. 어머니는 매일 그 시간, 그 곳에서, 그를 위해, 그 기도를 백 일간 손을 비비면서 한 결 같이 읊조리신다. 동일한 행동을 백번을 되풀이하면 습관화가 시작되는 것이 뇌의 생리이다. 석 달 열흘은 백일이니 백번의 기도로 자신의 뇌에 각인하면 상대의 뇌에게도 입력된다. 손을 비비면 열이 나고, 열이 나면 빛이 나고, 그 빛의 파동은 어머니의 가슴 앞에 놓인 정한수에 의해 증폭된다. 정성을 다하여 빌면 생명에너지가 시공을 초월하여 상대에게 쌓여 바람직한 변화를 이루어 낸다. 정월 대보름의 크고 환한 달을 바라보면서 빌면 기도의 공명효과는 분명 크게 증폭 될 것이다. 도가의 수행 중에는 이와 같이 기의 공명원리를 활용하여 달의 기운을 모으고 섭취하는 ‘태음신공’이 있다. 우리네 어머니의 백일기도는 수련도 학습도 필요 없이 오직 정성만으로 이루어내는 탁월한 ‘k-어머니의 k-기도’이다.

율력서(律曆書)에는 ‘정월은 천지인이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로 기록한다. 이 마음은 천부경의 ‘인중천지일’과‘천지인이 하나’라는 ‘삼일정신’에 상응한다. 천지인이 나와 하나일 진데 어찌 천지부모를 가볍게 여길 것이며, 한 형제인 뭇 생명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이처럼 인류가 생명을 아끼고 사랑할 때 ‘홍익이화 접화군생(弘益理化 接化群生)’의 우리 철학이 대체가치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인류를 구원할 빛나는 생명의 기도가 될 것이다. 지금 이 땅의 수많은 어버이들의 기도가 켜켜이 쌓여 응답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목숨으로 지켜온 한국전쟁의 참극이 바야흐로 희망이 되어 출현하고 있다. 세계가 모두 어려운 이때, K-문화는 지구촌을 풍미하고 K-방산의 위상은 대한민국을 어느새 세계 6대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리 앞에는 오직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이 있고 뒤로는 프랑스와 일본이 따라 오고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정월 대 보름 달님에게 비나이다. 내 가족, 내 나라만이 아니라 하나 뿐인 지구촌의 모든 존재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기를 간절하게 비나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늘에 빌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천손민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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