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봄은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봄은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5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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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봄은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

무슨 비밀 품고 있었기에
끓는 물속에서도
입 다물고 죽은
가막조개
어떤 고문에도
입 열지 않는
투사처럼
불 위에서도
굳게 다물었을
단단한 입술
속의 혀
온몸 혀뿐인,

(강기원의 ‘혀’)

봄은 언제쯤 올 것인가. 올 때마다 아름다운 거짓말만 하는 봄. 그래도 기다려진다. 잡초 자라나듯 가스요금도, 전기요금도, 식탁 물가도 올랐다. 바닥에 담긴 내 '혀'도 덩달아 뽀글거린다. ‘입 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갑갑하다. 해감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숨 쉴 수 없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강기원 시인의 ‘혀’이다. '작가세계'로 시단에 나온 강 시인은 시집으로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등이 있으며, 김수영 문학상을 받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시 ‘혀’에 등장하는 ‘가막조개’는 재첩과에 속하는 조개다.

소망진공원 아래 남강에서도 재첩이 잡힌다고 한다. 이제 진주에서 잡은 재첩국을 식탁에서 맛볼 수 있겠다. 그동안 보를 설치하는 등 수질개선에 많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맑은 물에 비치는 소망진공원은 요즘 핫한 장소이다. 소망진공원에 오르면 남강변과 촉석공원과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좋다. 유등 전시관과 김시민 호 선착장도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강변을 걸을 만하다.

작품 '혀'는 ‘비밀’, ‘끓는 물’, ‘죽은 가막조개’, ‘고문’, ‘투사’, ‘불’ 등의 시어들을 볼 때, 화자가 ‘가막조개’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혀’를 읽으면 서대문형무소의 취조실이 생각나게 한다. 일제가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에게 가한 숱한 '고문'과 간수들이 수감자를 통제하고 감시한, 역사교훈 여행을 하는 듯하다. 이는 진주의 촉석루와 남강과 대밭과 의암을 갖다 놔도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고장이다.

진주성은 왜적에 대항하여 민관군이 함께 싸운 역사의 현장이며 교육장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아나 침공에서 볼 수 있듯,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매카시즘에 의해 인권 유린은 물론 멸문지화 당한 이들이 많이 있다. 사회적 신분 문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소외당하는 자들의 존재감은 있는 걸까. 시인은 ‘어떤 고문에도/입 열지 않는/투사’처럼 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투사’는 누구일까. 어렵게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아닐까. 화자는 ‘가막조개’를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가막조개’와 말 걸기를 하고 있다.

작품 ‘혀’는 짧지만 독자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소망진공원의 유등처럼 어둠을 밝혀주는 ‘투사’를 기다려 본다. 하도, 섭천 소가 웃을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글쟁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온몸이 손인, 손뿐인 덩굴손처럼 가진 것이라곤 ‘혀’밖에 없는,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켜야 하는 아이러니한 존재라고 한다. 배고픔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거짓과 참을 구별하는 '판단력‘도 이 못지않을 것이다. ‘혀’와 펜밖에 가진 것이 없는 시인은 현실의 벽 앞에서 딱히 해결책은 보이질 않는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

나에게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쟁기 같은 펜. 가진 것이 단 하나밖에 없을 때, 그것은 가장 간절한 존재가 된다. 이 시대는 갈증 날 때 물 한 모금처럼 꿋꿋한 혀와 펜이 절실하다. 빼꼼히 보일락말락 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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