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단상-산티아고 카미노(camino)-길 위에 서다
전원생활의 단상-산티아고 카미노(camino)-길 위에 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5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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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
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산티아고 카미노(camino)-길 위에 서다

35년여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서 남은 삶을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아야 할까?’ 평생직장에 충직한 큰 머슴으로 살아왔으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혹 서툴고 미숙하여 사회적 약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할 것이고, 거친 세파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인데 과연 ‘나에게 그만한 저력과 열정과 용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라’. 익숙한 것에 길들어져 있는 환경에서는 나를 볼 수도 없고 세상을 볼 수도 없다. 업무 외엔 어떤 낯선 것도 받아들일 여유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일단 떠나보자. 그곳이 어디든 나를 시험할 수 있고 나를 만날 수 있는 극한의 환경으로 나의 임계치가 어디까지인지 나를 밀어 넣어보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산티아고 순례길이 검색되었다.

40여 일이 소요되는 긴 여정인데 ‘자리를 비울 수가 있을까? 회사 일은 어찌하며 처리해야 할 업무들은 어떡하지.’ 그러나 이것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오만함과 교만이며 그러나 평생 열심히 일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 미룰 것도 주저할 것도 없이 개략적인 계획을 회사에 통보하고 후임자를 물색하고 기초 체력을 위해 헬스도 등록하고…. 생전 처음으로 아웃도어 용품도 사야 하는 부산을 떨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국경 지역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반도를 가로질러 산티아고 성당까지 800km를 매일 평균 25km씩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야 하는 험하고 험난한 길이다. 육체적인 고통의 인내보다 정신적인 의지와 도전 정신이 우선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그 길 위에 선다. 직장을 그만두고 뭔가 떠나와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 영혼에 상처가 있어 치유의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 병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이 순례길을 걷다가 죽어도 소원이 없다는 신앙적인 사람들, 자식들에게 도전과 모험심을 주고 싶은 부모들, 정말 여러 모습으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오지만 분명한 것은 일상에서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공통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만 배낭에 넣어도 12kg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 보니 완주가 불가능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버리기 시작했다. 마침 숙소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았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비워야 멀리 갈 수 있고 현재의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터득된 셈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멈추지만 아니한다면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첫날 나폴레옹이 걸어서 넘었다는 피레네산맥 정상에 도달하니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압도하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감격했다. 첫날에 1,500고지를 넘게 하는 의미가 분명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여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성실한 사람으로 평가되었고 자신보다 직장이 먼저이고 나를 위한 휴식, 휴가마저 포기하면서 직장에 충성한 전형적인 우리 세대의 직장 맨이었지만 이제는 떠나고 멈춰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음에 한없이 가슴이 벅차고 불안하고 불확실성이 앞서는 여러 상념이 교차하였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자존감으로 남은 날들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만나는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며 자기 것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들이 그 카미노에 있었다. 지치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면 나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곤 하였다.

마침내 출발한 지 33일 만에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 두 손을 크게 올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시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일을 볼 수 있는 혜안과 지혜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삶이 감사와 봉사만으로 충만하기를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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