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3)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6 15:0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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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3)


이번부터는 세계 5대 성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유언과 삶의 철학을 소개하니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들려준 석가모니(釋迦牟尼:BC563년경~BC483년경·80세)께서는 길 위에서 탄생, 길 위에서 대도(大道)를 성취하시고, 45년간 맨발로 전법교화(傳法敎化)를 하시다 길 위에서 열반(涅槃)에 드시었다. 입멸(入滅) 3개월 전, 자신의 입멸을 미리 예고하셨다. 3개월 후 그날이 오자 편안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열반에 들게 되었는데 이때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자 다음과 같이 위로하면서 열반(涅槃)에 들었다. “울지 마라. 가까운 사람과 언제나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여라.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다.” 최초로 불교를 세운 고대 인도(지금의 네팔) 사람으로, 석가모니란 석가족(釋迦族)에서 나온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불타(佛陀‧Buddha:깨달은 사람이란 뜻)·여래(如來)·세존(世尊)·사주(師主)등의 존호(尊號)가 있다. 석가족 왕족(王族)의 태자(太子)로 출생하여 결혼하고 아들까지 있었지만, 인생 문제에 깊이 괴로워하다가, 29세에 출가하여 수행(修行)하였다. 35세 때 크게 깨달음을 얻고(大悟成道), 40여 년간 각지에서 교화(敎化)를 실시하였다. 석가는 당시의 지나친 사변적 논리를 떠나, 인간 현실에 주목하였으며, 우선 인생의 무상(無常)과 고통과 무아(無我)를 이해하였다. 이것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허무(虛無)의 밑바닥까지 관철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진실의 근거를 개시(開示)하는 것이 되었다. 그는 죽음에 즈음하여, 자기를 근거(根據)로 하여 다른 것을 규정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를 등불로 하고, 법을 등불로 할 것을 부탁하였다. 전자(前者)를 자등명(自燈明), 후자를 법등명(法燈明)이라 한다. 석가의 종교적 가르침은, 사람은 죄에 따라 벌을 받으며, 각자 쌓은 덕에 따라 상을 받게 된다. 80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르자 부처는 수 백 명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통하여 화합과 인내를 강조하였다. 너희들은 스승이 떠나갔고, 우리에게 스승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거라. 내가 너희에게 전해준 가르침과 규칙이 나의 죽음 뒤에 너희의 스승이다.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인류의 영원한 스승 공자(孔子:BC551~BC479·72세).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자 유교(儒敎)의 시조(始祖). 노(魯)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德治)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고, ‘시경(詩經)’, ‘서경(書經)’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사람이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자의 사상은 2,500년 동안 살아 숨 쉬며 동양인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형성했다. 무당의 딸로 태어난 10대 후반의 어머니와 70세가 다 된 아버지 사이에서 야합(野合)으로 태어났지만 노력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십 평생을 10년 단위로 짧게 정리한 38자의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자서전이자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열다섯 살 무렵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서른 무렵에 내 뜻을 세웠다/마흔 즈음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쉰 무렵에는 천명을 알게 되었다/육십에는 남의 말이 순수하게 들렸고/칠십이 넘어가면서는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인간의 성숙 과정과 단계를 깊이 성찰하여 압축한 한 편의 정신사라 할 수 있다.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일생의 마지막까지 ‘주역’을 연구하면서 64괘(卦)에 대한 정밀한 해석을 남겼다. 수십 년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상과 인간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 결과 공자는 ‘만세사표(萬世師表:영원한 스승의 표상)’로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 “거대한 산도 무너지기 마련이고 강한 들보도 터지기 마련이며 현자(賢者)도 시들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의 생애를 마칠 때가 닥쳤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시 북부 사수(泗水) 일대에 위치한 공자와 그 일족의 묘역에는 10만이 넘는 묘비가 숲처럼 산재해 있으며, 단일 가문의 묘지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로 1994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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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02-07 06:14:45
이해/2005. 3. 2, 공의식)/제공처 다락원.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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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02-07 06:13:21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불교는 원래부터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부처가 새로 만든 후발신앙으로 브라만을 섬겨온 인도에서도 다시 배척받게 된 인도발 신앙입니다. 창조신보다 높다는 Chimpanzee류의 부처를 받드는 무신론적 Monkey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불교와 섞인 후대의 중국 도교도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는 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철학.민속적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일본 신도는 내세관도 없고 교의도 없다. 또 경전도 없고 교주도 없으며 설교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신도교 신자라는 말도 없다...1870년에는 국가신도를 국교로 정하고 각 지역별로 신사를 정리 체계화하여 그 정점에 천황을 둔 것이다.출처:신도(새로운 일본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