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한글, 만족하세요?
아침을 열며-한글, 만족하세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09 10: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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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한글, 만족하세요?

한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최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런 수준의 창제된 문자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바가 없다. 알파벳이나 한자에 비해 그 세력은 약하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그것들을 훨씬 능가한다. 컴퓨터 자판을 써보면 알파벳을 능가하는 그 편리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글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성역이다. 

그러나 그런 한글을 위해서라도 ‘신성불가침’은 좀 위험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굳이 이 한글에 대해 좀 시비를 걸어볼까 한다. 분명히 좋기는 하지만 현행 한글이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선 내지 발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대로 그 보완점을 몇 가지 나열해 본다.

우선, 그 명칭이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아주 익숙하다. 에이 비 씨 디...에 비해 참 가지런하다. 그런데 이 명칭에 예외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역, 디귿, 시옷이 그것이다. 그 이유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 낯선 이 글자들을 익숙한 한자발음으로 적다보니 윽, 읃, 읏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어 그 비슷한 발음의 한자(役, 末, 衣)를 골라 썼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굳이 한자 발음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그것을 당초의 의도대로, 기윽, 디읃, 시읏으로 고치는 게 마땅한 것이다. 

다음, 외국어 표기에 한계가 있다. 예컨대 영어의 f, l, v, th, 독어의 c, ch, z, ö, ü, 중국어의 走, 元, 일어의 つち, 金銀(きんぎん) 등등의 한글 표기에 문제가 있다. 실제 발음과 한글 표기 사이에 괴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무리한 한글 표기가 아주 이상하거나 아주 촌스럽게 들린다. 영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가능한 길이 있다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부 사라진 글자를 되살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다. ‘ㅈ’과는 발음이 다르다. 예컨대 독일어의 ‘S’는 이 세모로 정확하게 표기된다. 게다가 이 ‘△’의 된소리인 쌍세모를 사용하면 독일어의 ‘Z’ 등 더 많은 외국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이 영어 등의 ‘f/ph’ 표기다. 현재는 이것을 일괄적으로 ‘ㅍ’으로 표기한다.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한 혼란을 야기한다. 이 경우는 ‘ㅍ’ 위에 ‘히읗’처럼 점을 하나 찍은 글자를 추가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l’의 경우는 굳이 앞 글자 받침에 리을을 나누어 적지 않더라도 쌍리을 만들어 쓰면 역시 간단히 그 표기가 해결된다. 

‘v’의 경우도 비읍의 아랫부분을 ‘v’처럼 뾰족하게 쓰면 간단히 해결된다. ‘th’도 현재는 ‘ㅅ’으로 표기해 아주 어색하게 들리는데 이것도 ‘ㄷ’ 위에 ‘히읗’처럼 점을 하나 찍은 글자를 추가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혹은 쌍디귿(‘ㄸ’)도 괜찮다. 독일어의 ‘c’ 발음은 ‘△’ 위에 ‘ㅈ’처럼 가로 줄을 하나 그어주면 역시 정확하게 표기된다. 중국어의 ‘菜cai’ 등의 발음도 그것으로 정확히 표기된다. 이중모음도 많다. 예컨대 중국어의 ‘元yuan’은 현재 ‘위안’으로 표기되는데 너무나 어색하다.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기인 것이다. 이 경우는 모음 부분을 ‘ㅠㅔ’로 표기해주면 역시 정확히 표기된다.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고집을 버려야 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같은 글로벌한 시대에는 이런 한글 개혁이 꼭 필요하다. 

다음, 현행 외래어표기법도 문제가 많다. 현지 발음과 너무나 괴리가 크다. 굳이 오렌지를 ‘아륀쥐’로 표기하는 것은 오버이지만, ‘father’를 ‘파더’라고 표기하는 것은 못난 짓이다. 독일어의 ‘에얼랑엔’을 ‘에르랑겐’으로 표기하고 ‘바하’를 ‘바흐’로 표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일본어의 ‘킨긴(金銀)’을 ‘긴긴’으로 표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본어처럼 글자가 아예 없거나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한글은 조금만 수고하면 개선과 발전이 얼마든지 가능한 우수한 문자인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수고하여 이것을 만든 세종대왕께 죄송한 일이다.

철학자가 한글 운운하는 것은 주제넘은 월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百ᄇᆡᆨ姓셔ᇰ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ᄒᆞᇙ 노미 하니라’ 하는 것이 여전히 현실인 만큼 이런 의견 개진이 철학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겠다. 이는 국립국어원에 보내는 탄원서이기도 하다. 부디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이것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논의되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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