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리더의 확신과 비전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리더의 확신과 비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15 14: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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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리더의 확신과 비전

삼십 년도 훨씬 전, 일본 출장을 다녀오던 날이었다. 해외 출장은 보통 유경험자와 함께 가는 게 관례인데, 그날은 세 명의 일행이 모두 첫 출장이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우리는 공항으로 가기 전 도쿄 시내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오후 비행기라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쇼핑을 마치고 신주쿠역에 가기 위해 순환 전철을 탔는데, 실수로 반대 방향 전철을 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주쿠에 도착하니 나리타행 기차 출발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신주쿠역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캐리어에 쇼핑한 물건까지 가득 들고 있어 움직임이 빠를 수가 없었다.

예약된 기차를 놓치면 환불은 물론이고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시계를 흘깃 보더니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4분, 3분 시간은 줄어드는데 기차를 타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끝이 없는 길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뒤처지기 시작하더니, 숨을 헐떡거리며 멈춰선 채 ‘아무래도 시간 안에 도착이 어려울 것 같다’며 포기하자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역무원은 그의 짐을 빼앗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뛰는 그녀의 모습에서 기차를 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멈춰 섰던 일행도 다시 힘을 내어 뛰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앞서 달리던 역무원이 멈춘 곳에 막 출발하려는 기차가 보였다. 나리타행이었다. 캐리어를 던지다시피 뛰어올랐다. “아리가또, 아리가또…” 역무원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순간 기차는 출발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서 달린 역무원의 모습에서 우리는 믿음을 보았기에 무작정 따라 뛰었다. 그 순간만큼 그녀는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였다. 나 역시 그 짧은 5분 동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확신에 찬 역무원의 행동 때문이었다. 기차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전력 질주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고생만 하고 결과가 나쁘면 어쩌지!’ 하는 부정적 사고는 팀원을 서서히 무능력자로 만든다. 그럴 때 리더마저 확신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모든 팀원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모두가 전력 질주하게 만드는 것이 리더의 확신과 비전이다. 물론 리더가 확신을 가진다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전이란 팀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이다. 역무원이 그러했듯 리더는 본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방향성을 제시하고,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의 고충을 살피고, 그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면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성의 범위가 궁극적인 목적, 즉 비전의 방향일 때 방향성이 있다고 한다.

급변하는 시대인 만큼 시대에 맞는 방향성도 조금씩 다르다. 또한 모든 조직이 같은 방향성의 리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복잡한 만큼, 조직의 형태와 그 조직을 둘러싼 환경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소통과 평등을 말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일부의 리더가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방향성이 있는 조직은 리더가 앞에서 모범을 보여주지만, 갈팡질팡하는 조직은 리더가 뒤에서 폼만 잡고 지시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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