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어린시절 공책에 눈먼 응원가
세상사는 이야기-어린시절 공책에 눈먼 응원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22 15: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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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어린시절 공책에 눈먼 응원가

1970년대 '새벽종'이 울리는 '새 아침'이면 어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백 년 이어 온 가난의 상징 초가지붕을 개량하고,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나와 신작로를 보수하고 몇 해 전 홍수 때 마을을 휩쓸고 간 개천에 제방을 쌓았다. 일주일에 한 번 졸린 눈을 비비며 빗자루를 들고나온 아이들은 투덜거리며 마을 이곳저곳을 쓸고 학교를 오가며 길가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잘살아 보세'를 목이 터지라 부르며 그렇게 '새마을'을 가꾸던 시절, 태극기와 만국기를 그린 두 손이 마주 잡은 그림의 의미도 모르면서 물에 갠 분유와 빨랫비누 모양의 밀가루빵과 옥수수죽으로 점심을 대신하던 시절, 가난의 끝자락이 채 가시지 않은 시골 조그마한 오지 마을에도 가을이면 축제 같은 운동회가 있었다.

박을 터뜨려 색종이가 흩날릴 때까지 콩주머니를 던지고, 개선문(?)을 통과해 기마전을 펼치고, 검정 고무신을 양손에 한 짝씩 움켜쥐고 내달을 때면 청군, 백군 가릴 것 없이 똑같은 응원가로 목청껏 응원한다. '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 머리 위에서. 달린다 넓은 마당, 푸른 하늘 마시며.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들은 다 같은 ○○학교 어린이' 견물생심(見物生心). 면장님과 이장님이 협찬한 공책과 연필에 마음을 빼앗긴 한 아이가 슬쩍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은 못 해라.' 진심이 통했는지 순식간에 모든 아이가 ' 저쪽 편은 못 해라'라고 목이 터지라 응원한다. 잠시 후 본부석 확성기가 귀를 찢는 '삐~' 소리에 뒤이어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토해낸다. "응원가를 당장 멈추세요!" 교장 선생님의 격노한 목소리다.

그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때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금 제대로 기억할 리 만무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못하는 청(靑)군' 덕에 이기겠다는 '적(赤)군'을 보며 공책에 눈이 멀어 '저쪽 편은 못 해라'라고 노래하던 그 가을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적군은 더 못 했잖아'라는 청군의 볼멘소리는 그 덕에 정권을 창출하였다(창출되었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니 온 나라를 반으로 가르고 상대의 부족함에 기대어 승리를 꿈꾸는 청, 적 양 진영의 수준은 백면서생에 불과한 내 눈에도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국민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외침에도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내로남불 후안무치의 행태에 분노해 5년만에 그들을 심판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혁명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존경과 권위를 상실한 야당은 의석수의 우세만 믿고 지난 5년의 실패한 정치에 안주한 채, 전과 4범에 5~6가지 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씨의 구속을 막으려고 방패막이 스크럼을 짜고 있는 모습은 한국 정치를 위해서도 정말 처참한 모습이다. 이 대표 구속은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희망의 비전없이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괴물 집단이 되어 내년 총선까지는 집권 여당은 무기력하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부부싸움의 승자는 남편이나 아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부부다. 잘잘못의 원인과 경중을 떠나 누군가 지기를 자처함으로써 소중한 그 가정을 지켰다면, 그 싸움의 패자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가족이다. 배우자의 잘못에 분노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 끝에 가족의 화목을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표면적인 승자 홀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패자의 길을 택한 이의 희생을 토대로 한다. 더 나아가 패자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 오직 이기기 위해 파국에 이르는 것조차 괘념치 않는 이가 넘쳐나고 그런 이들이 이기는 곳에는 희망이 없다. 그곳에 진정한 승자도 없다.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눠 가져라."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이 내린 협박성 주문이다. 이 단호하고 끔찍한 주문에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라'며 패소를 자처한 여인과 흔쾌히 '그리하자'며 승소를 예감한 여인 중 누가 그 아기의 어머니인 줄 모를 이가 어디 있으랴. 비록 솔로몬의 지혜가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가족이나 친구, 우리가 속한 곳, 더 나아가 이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고 아끼고 애국하는 위정자가 누구인지는 쉽게 드러난다. 그런 길을 택하는 이에게 축복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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