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4)-심리언어, 자신감
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4)-심리언어, 자신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22 15: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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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
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4)-심리언어, 자신감

프랑스 소설가이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는 산문집 <예찬>에서 ‘볼바시옹(volv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고슴도치가 조금만 위험이 닥쳐도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정서적 감정을 거부하고 수동적인 방어법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타인 앞에서 왜 그토록 긴장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로 되돌아가 보면 심리적 불안 요인과 만나게 된다.

처음 간 자리,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중요한 순간, 입을 떼지 못해 불편한 상황을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리고 눈을 자주 깜빡거리며 얼굴은 경직되어 조음기관(調音器官)이 미세하게 떨린다. 긴장하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목소리도 변한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청중과 시선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 상대의 반응에 응답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말하는 것은 아주 먼 남의 이야기로 들린다.

필자는 2000여 명의 수강생을 만나며 다양한 사례를 분석해보니 심리적인 트라우마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49세 남성 B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아버지는 학교 운영위원장이었다. 그 덕분에 전교생이 모이는 아침 조회 단상에서 멸공 웅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교장은 담임께 지시했다. 매일 수업이 끝난 후 담임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았고 담임은 정성껏 그를 지도했다. 웅변 발표 당일 운영위원장인 그의 아버지와 교장 선생님, 각 반의 선생님과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멸공 웅변을 위해 단상에 올라간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전교생과 그의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자의 침묵은 지켜보던 학생들을 더욱 술렁이게 만들었다. 수십 초가 흘러도 말이 없는 그를 향해 담임이 단상 아래서 이름을 부르며 앞 구절을 작은 소리로 말해 주었지만 그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겨우 담임이 내려오라는 말을 들은 그가 두서너 계단 내려오는데 그때 아들을 향해 달려 나온 아버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날의 기억은 B씨의 입을 닫게 만들었고 큰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경찰공무원이 되어 발표할 일이 생기면 아무도 모르게 청심환을 먹어야 했고 때론 술을 먹어야 발표할 수 있었다. 회식 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취하지 않으면 노래를 할 수 없었고, 스피치에 대한 불안은 타인에게 휘둘리며 살게 했고 외부 자극에도 민감했다. 오십이 다 되어 팀장 직책에 임명되고 보이스피싱 강의를 맡아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인문스피치아카데미에 등록한 것이다. 제1강, 자기소개 시간에 “공중 스피치를 한다는 것은 하늘이 노랗게 되는 일”이라는 유머로 시작했지만 말하는게 고통스러운 B씨의 내밀한 곳에는 플래시백(Flashback)현상, 즉 아버지의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말을 잘못하면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칠 것 같은 두려움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이런 경우는 불안 요인 뒤 숨어있는 심리적 정신적 요인을 찾아 해소하는 치료법이 중요하다. 목소리는 닫혀있는 잠재의식의 문을 여는 초인종과 같다. 목소리는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기격려, 청중의 적극적 듣기가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자신감이 생기면 목소리가 달라지고 목소리가 바뀌면 주위의 반응도 변한다. 대중 앞에 늘 작아지는 자신을 바로 세우고 싶어 탈출구를 찾은 B씨의 스피치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 부딪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은 적극적인 성격으로 개선시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자기암시가 된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을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것만이 우울한 세상에서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심리언어, 자신감을 키워가는 방법이다.

오늘, 대중 앞에 발표할 일이 있는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 그리고 3초의 여유로 요동치는 자기 내면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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