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위선자와 살인자
도민칼럼-위선자와 살인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2.27 15:07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승택/경남필하모니오케스트라 부단장
김승택/경남필하모니오케스트라 부단장-위선자와 살인자

“최고선은 가장 도덕적인 사람에게 가장 완전한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사회에서 이런 명제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희망이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덕의 기준이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A라는 사람은 도덕의 기준이 너무 높아 자신이 행하는 행위가 부도덕하고 혐오스러워 자신을 부끄럽다고 하는가 하면, B라는 사람은 도덕 기준이 전혀 없어 사기를 치거나 살인을 하여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사는 도덕 기준이 없다. 도덕 기준이 없지만 완벽한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 면에서 도덕 기준이 없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B와 천사는 같은 마음의 평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동요가 없으니 말이다.

미국에 빌 코스비라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있었다. 그는 무려 60건이 넘는 성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 그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주변의 많은 이가 범죄 행각을 알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감옥에 가자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를 성범죄자가 아닌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그중에는 더 끔찍한 어린이 성폭행으로 감옥에 가 있는 유명 연예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 유아 성폭행범을 비난하는 것보다 코스비에 대한 위선자 비난이 더 크고 광범위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성범죄를 비난하지 못하고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라고 짐작된다. 첫째 그의 생활이 위선이어서 성범죄자임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싶은 사람, 둘째 비난하는 본인이 성범죄에 동정적이거나 범죄 행위를 해서 위선자로 비난하는 사람. 여러분들은 그들이 어느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위선이란 과연 나쁜 것일까? 필자는 위선에 대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도덕이 없으면 살인자와 천사는 같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위선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를 안다는 이야기이다. 그 도덕적 잣대를 알기 때문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을 숨기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위선이다.

인간의 도덕적 잣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스스로 느끼는 괴로움도 커질 것이고 위선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위선이 없다는 것은 천사이거나 도덕적 기준이 영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대부분 사람은 그 중간에서 어중간한 위선자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위선자라는 비난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다. 우리가 가진 위선 의식에 가슴이 뜨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응도 두 가지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도덕심을 더 높이는 계기로 둘째는 더 완벽한 위선으로 자신을 감싸는 계기. 첫째를 생각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비난에 동참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위선자로 몰린 사람을 더 강력히 비난하며 자신은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유달리 위선자란 비난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살인자에 쏟아지는 비난보다 위선자에 대한 비난이 더 크고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중적 잣대로 국민을 기만하는 거대언론들의 배경이 있지만, 거기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심리도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오죽하면 살인이나 성폭력은 했지만 나는 원래 그런 놈이니 위선자는 아니라는 항변이 먹힐까? 이제 위선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범죄는 범죄 자체를 비난하고 미워해야지 위선자라고 비난하면서 우리의 죄를 합리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위선이란 그 자체가 범죄가 아니다. 어쩌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에 자신의 행위를 맞추지 못할 때 그 행위를 숨기고 싶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게 그렇게 비난할 일인가? 필자는 오히려 위선의 폭이 큰 사람이 더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사회를 위하여 더 좋은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속 잣대가 더 높기 때문이다.

위선자라고 삿대질을 하는 수많은 위선자에게 전해주고 싶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