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꿈이 있기에 들꽃은 피어난다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꿈이 있기에 들꽃은 피어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05 15: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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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꿈이 있기에 들꽃은 피어난다

벚꽃이 만개한 공원 시멘트 계단
혼자 앉은 할머니

바람이 찬지 바닥이 차가운지 무말랭이처럼
자꾸만 쪼그라드는 저 조그마한 몸

어떻게 끌고 왔을까
폐지로 가득 찬 저 무거운 수레를

세상은 온통 봄빛인데
아무것도 새로운 것 없다는 듯
만개한 봄 속에 앉아 홀로 무표정하다

아직도 슬하에 남아있는 식솔이 있을까
저릿한 듯 무릎을 짚고 일어서서
다시 수레를 끄는 짚신 같은 노구

저 극빈의 행진을 위해
꽃잎은 하얗게 하얗게 흩날리고

(황영숙의 ‘어느 봄날’)

벌써 3월이다. 코로나 이후 첫 번째 ‘봄’이다. 강변에 얼음이 녹고 산수유, 매화꽃, 봄까치꽃 피는 봄. 버들강아지가 개울에 얼굴을 담그고 봄 오는 소릴 엿듣고 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쉰내 나던 추위가 꼬릴 감추기 시작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황영숙 시인의 ‘어느 봄날’이다. 황 시인은 대구시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들꽃을 가꾸며 연구하고 있다. 왠지 ‘봄’ 하면 들꽃이 잘 어울릴 것 같다. 후미진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이름 없는 들꽃.

황영숙에게 ‘봄’은 시가 흐르는 길목인 셈이다. 그의 시는 들꽃을 손질하듯 정직한 표현으로 삶을 그려내고 있다. ‘노구’ ‘무말랭이’ ‘폐지’ ‘무거운 수레’ ‘식솔’ ‘극빈’ 등의 보편적 체험인 어느 ‘할머니’의 힘겨운 삶을 난해하지도 않게 잘 그려내고 있다.

‘벚꽃이 만개’했지만 ‘할머니’는 춥다.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줍는다. 배고프고 힘없으면 자연스레 추위를 타기 마련이다. ‘극빈’의 삶에 ‘자꾸만 쪼그라드는 게 조그마한 몸’이다. ‘봄’이 왔다고 하는데 춥기는 매일반이다.

이렇게 행간을 읽을 수 있겠다. ‘공원’이 왜 근로자로 다가올까. 어디를 가나 ‘어떤 봄날’은 있을 거다. 봄이 오면 들꽃이 꼼지락거리고 누구에게나 노란색 유채꽃처럼 꿈은 피어오른다. 그러나 봄은 봄일 뿐이다. 이맘때쯤 남강 빨래터에 아낙들이 모여 부른 노래.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 낭군” ‘진주난봉가’가 들리어 오는 듯하다.

‘봄’이 오면 누군가는 아이의 우윳값을 위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노란 봉투를 꺼낼 것이다. 이는 며칠 전 ‘떠돌이 개’ 목에 걸린 편지처럼 삶의 현장에는 슬픔이 늘 자리 잡고 있고, 훈훈한 마음씨가 공존하고 있다. ‘할머니’는 ‘만개한 봄 속에 앉아 홀로’ 있지만 ‘다시 수레를 끄는 짚신 같은 노구’라고 시인은 말한다. ‘봄’은 매년 왔지만 ‘꽃잎’과 함께 어디로 갔는지 흘러가 버렸다. 인생은 어느 순간 ‘짚신’처럼 닳아 살며시 사라질 것이다. 허무하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다.

‘슬하에 남아있는 식솔’을 생각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다. 봉제공장이나 가발공장에서 꿈을 키우던 누이들이다. ‘벚꽃이 만개한 공원’에서 왜 자꾸 ‘벚꽃’처럼 흩날리는 고독사가 돋아날까. 진주난봉가를 즐겨 부르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던 그녀, 눈물처럼 날리는 꽃송이가 된 그녀가 왜 그려질까.

개울 어디쯤 '봄'은 오고 또다시 오겠지만 처지에 따라 체감도가 달라진다. ‘꽃잎은 하얗게 하얗게 흩날리고’ 그래도, 그래도 ‘꿈’이 있기에 이름 없는 들꽃은 피어난다. 강물이 흐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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