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8)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8)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3 15:4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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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8)

지난번에는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모기와 악연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모기의 특성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모기는 약 1억 7000만 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지금의 남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등장하여 약 200만 년 전 처음 등장한 인류(Homo Habilis)보다 훨씬 더 지구에서 오래 살아온 동물이다. 모기는 귀찮은 존재 정도가 아니라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도 사람을 많이 죽인 생명체이다.

지구에 사는 모기는 3500여 종이 있고, 한국에는 50여 종이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모기가 피를 빨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흡혈 모기는 100~200종이다. 이 중에서도 산란기의 암컷만 흡혈을 한다. 모기는 식물의 과즙 등을 먹고 사는데, 산란기 암컷은 알을 키우려고 동물성 단백질과 철분 등 영양소가 필요해서 사람이나 동물 피를 빨아먹는다. 모기에게 물렸을 때 간지러운 것은 모기 타액(唾液)이 몸에 들어왔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기가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같은 위험한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72만 5000명, 개에게 물려 광견병으로 죽는 사람이 2만 5000명, 뱀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5만 명, 전쟁·테러·범죄 등 사람에게 죽는 사람은 47만 5000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기는 ‘지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말라리아를 ‘학질(瘧疾)’이라고 불렀다. 학질에 걸렸다가 낫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학(瘧)을 떼다’라는 말도 생기게 되었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느라 진땀을 빼거나 거의 질려 버렸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모기는 인류 역사도 바꾸어 놓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대제국을 꿈꾸며 중동에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아시아의 인도 근처까지 접근했지만 정복을 멈춰야 했다. 모기가 퍼뜨린 말라리아의 황열병 등이 군사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또 2차 세계대전 때는 남태평양에 주둔하던 연합군이 말라리아로 발이 묶여 전쟁이 장기화하기도 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류가 상황을 바꾸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반부터다.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 Muller:1899~1965·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가 살충제 DDT를 개발하면서부터이다. DDT는 모기 출몰 지역에 엄청나게 살포되어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모기가 매개가 된 질병은 1950년대 DDT에 저항성이 생긴 돌연변이 모기가 등장하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고 1970년대 DDT가 인체에 암을 유발하고 환경을 해친다는 이유 등으로 사용이 금지되자 모기는 더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모기를 박멸하기 위한 인간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전자를 조작해 수컷 모기만 태어나게 하거나 암컷에게만 치명적인 균을 퍼뜨려 암컷 개체 수를 줄이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지만 이런 방법은 모기의 암·수를 골라내기가 쉽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살아있는 말라리아 원충과 이를 죽이는 치료제를 인체에 넣었더니 90% 가까운 말라리아 예방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앞으로 인간의 기술력이 더욱 발달하여 모기를 지구상에서 모두 없애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는 새와 박쥐, 물고기, 개구리 등의 중요한 먹이이기 때문이다.

또 모기는 꿀벌처럼 꽃가루를 몸에 묻혀 옮겨서 식물이 열매를 맺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즉 모기가 없으면 식물 수천 종이 멸종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모기를 무조건 박멸하기보다 질병을 옮기는 모기만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모기를 박멸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개체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모기 암컷은 한 번에 100~200개씩, 한 달에 3~7번 알을 낳는다. 이렇게 매일 수십억 마리가 태어난다. 암컷은 수컷과 단 한 번 짝짓기 해 일생에 필요한 모든 정자를 받는다. 이 정자를 몸속에 저장했다가 조금씩 꺼내 수정해 알을 낳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두려움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는데 미물인 모기에게 생명을 잃었으니 세상사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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