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텃밭농사를 지으며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텃밭농사를 지으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5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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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텃밭농사를 지으며

둠벙에 개구리가 노는 걸 보니 영락없는 봄이다. 아침마다 지붕을 뒤덮던 서리도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정원의 화단에는 노란 수선화가 머리를 디밀고 나와 있다. 농로 입구마다 퇴비가 가득 쌓여 있는 것도 이즈음의 시골 풍경이다. 조그마한 텃밭에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는 만큼 나도 슬슬 농사 준비를 해야 하나 보다.

귀촌 후 7년째 텃밭은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텃밭이라 해봐야 국유지를 임대한 한 마지기 정도가 전부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 귀농은 아니고 귀촌이다. 평소 자연을 동경해 온 터라 흙을 만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농사가 직업인 사람들에겐 한가로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에겐 로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나는 농사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같은 날 같은 종자로 같은 장소에 심었는데, 다른 이보다 성장도 늦고 수확도 적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내 텃밭 농사의 스승은 인터넷이 9할이다 보니 실수가 잦은 것 같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밭을 갈고 농사 준비를 한다. 작은 텃밭이지만, 자급자족을 꿈꾸는 만큼 온갖 작물을 심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콩 심은 데 콩 안 열리고 팥 심은 데 잡초만 나기도 한다. 휴일을 맞아 나는 감자를 심고, 아내는 지난 가을에 심은 마늘밭 김을 매고 있었다. “당신은 똥손이야.” 잡초를 뽑던 아내의 조크에 할 말이 없다. 아내가 심은 마늘은 튼실하게 잘 크고 있는데, 내가 심은 마늘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절반이나 죽어있었다. 하물며 좋은 종자는 내가 골라 심었지 않았던가. 퇴비나 비료는 물론이고 물까지 똑같이 주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평생을 농사로 살아온 이웃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종자를 얕게 묻어서 그렇다고 한다. 마늘처럼 종자가 큰 알뿌리식물은 깊게 심든지 보온을 해 주어야 얼어 죽지 않는다고 했다. 미처 생각 못한 또 한 가지를 배운다.

텃밭 농사 7년이면 웬만한 농사는 프로가 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해가 갈수록 텃밭 농사가 어렵게 느껴진다. 몰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정보가 늘다 보니 더 어렵다. 그나마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지만,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대농이 아니면 농민 취급도 하지 않는 정부 정책이다. 소농은 모종 하나부터 퇴비까지 두 배 이상 경비가 들어간다. ‘농업경영체’ 등록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합원도 될 수 없으니 어떤 혜택도 없다. 농사도 부자만 지을 수 있으니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그냥 옛말일 뿐이다. 대농들에게 퇴비며 비료를 부탁할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계속 텃밭 농사를 지어야 할지를.

자유로운 삶을 이루는데 농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게 아직은 내 신념이다. 열정이나 신념 말고는 가진 게 없다. 흙이 좋고 산이 좋아 도시를 떠나왔지만, 내 땅이 없어 제도권 밖이니 늘 이방인이다. 그래도 도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간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흙을 더듬어 잡초를 뽑는다. 마늘 옆에 바랭이도 작물인 양 자라고 있다. 맨손으로 뽑으려니 뽑히지 않는다. 뿌리가 온 힘을 다해 땅을 움켜쥐고 있어서다. 풀 하나의 생명력이 이렇게 강한 것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인간의 마음에는 자연에서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끝까지 땀과 땅을 믿으려 한다. 다시 세월이 한 7년쯤 흘러도 여전히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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