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소외되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소외되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9 16:09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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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소외되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

갈전천 물결이
흔들릴 때
잽싸게 헤엄치는
송사리 떼 보인다

물속에 빠져있는 보름달

달이 움직일 때
거품이 일어난다

우두커니
나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도 나를 보고 있다

우두자국처럼 박혀 있는
가로등이
빛을 보탠다

송사리가 부푼 달을
파먹고 있다

(정수월의 ‘월아 마을’)

초록의 발걸음이 하루가 다르다. 문득 고개를 들면 산수유꽃이 노란 눈썹을 가린다. 바람에 성급한 꽃잎이 흩날린다. 꼼지락거리는 초록과 발악을 하는 추위가 막바지 샅바를 잡고 있다. 초록이 생존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는 봄. 요즘 도처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당국과 해당 지역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맘때쯤 러시아가 ‘악마의 무기’ 소이탄을 우크라이나 민간 거주지에 사용했다. 꽃비처럼 내리는 ‘뼈까지 녹이는’ 소이탄 사용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분단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한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정수월 시인의 ‘월아 마을’이다. 정 시인은 경남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고, 시집 ‘열세 번째 초록’ 등이 있다. 현재 진주문인협회와 시우담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수월은 시뿐만 아니라 해금, 기타, 바이올린 등을 연주한다. 이처럼 폭넓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글감은 다양하다.

시집 ‘열세 번째 초록’을 보면 ‘갈전천’과 ‘월아’ ‘길’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시인에게 ‘월아산’과 ‘갈전’은 개인적인 상징인 듯하다. 오랫동안 월아산 초입에서 체험한 것들이 상징으로 작품에 나타난 것이다. 정수월은 '길'이라는 작품에서 ‘발 딛는 순간 길은/ 어디랄 것 없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월아’의 길은 어떤 길일까 궁금해진다.

월아산은 진주 8경 중의 하나이다. 혁신도시에서 가까운 월아 마을엔 진주를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인 청곡사가 있다. 요즘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월아산 자연휴양림. 질매재에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갈전천’을 흐르는 ‘송사리 떼’ 보이고 이따금 오리들이 마실 다니는 곳. 간밤에 눈 붙이고 아직 떠나지 못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시인은 시적 상상에 잠긴다. 고갯길을 걸어갈 때 ‘달’이 나를 따라다니듯 ‘달도 나를 보고 있다’ ‘달’ 뿐만 아니라 마당에서 뛰어놀던 강아지와 고양이와 닭들도 그를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이제, 이주의 아픔을 앓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달이 움직일 때/거품이 일어난다’ 이제, 시인은 개발의 물결에 떠밀려 거품처럼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

한창 준비 중인 ‘2023 월아산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월아산 숲속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당의 고향 고창 질마재도, 악양의 회남재도, 이름과 길이 아름답지만, 진주 ‘월아’산의 질매재도 그에 못지않다. “물결이 흔들릴 때” ‘갈전천’을 비추던 “가로등이 빛을 보탠다” 그리고 “송사리가 부푼 달을 파먹고 있다”고 말한다. 정수월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소외되고 사소한 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이름 없는 들꽃과 초록으로 물든 길을 걷고 싶다. ‘월아산 정원박람회’가 진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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