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적선으로 구한 목숨
기고-적선으로 구한 목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9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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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개모/합천군 문해강사
정개모/합천군 문해강사-적선으로 구한 목숨

오랜 옛날 합천 고을 홈터 마을에 과거시험 십 수가 넘는 한 선비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내는 선비의 글공부에 내조하다 보니 살림살이는 날로 궁핍해지고 있었다. 매번 낙방 때마다 선비에게 이제 글공부 포기하고 어려운 살림을 잘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농사일을 하자고 타일러 보았으나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는 선비에게 섬세하게 짠 삼베를 장에 가서 팔아 오도록 시켰다. 생전 처음 삼베를 팔아 오라고 하니 선비 체면상 답답할 지경이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는 수 없이 시장에 가서 “여기 아주 좋은 삼베 사요”하고 외쳐서 모두 팔고 나니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선비는 혹 집으로 가다가 도적이라도 만날까 봐 삼베 판 돈을 전대에 꽁꽁 묶어 집으로 가던 중 길가에 나이 많은 한 늙은이가 죽어가는 시늉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에 선비는 맘속이 복잡해진다. 그냥 지나치자니 꼭 죄를 짓는 느낌이고 베풀자니 아내 보기 면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만한 돈을 벌어 집에 갈 생각으로 삼베 판 돈을 몽땅 그 노인께 건네주었다.

이때 노인이 하는 말이 “이렇게 고마운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점괘로 당신께 은혜를 베풀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점괘는 위태롭거든 타지 마라, 무섭거든 춤을 추어라, 아내가 반기면 살살 기어라”고 딱 세 마디만 남기고 반드시 명심하라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삼베 판돈을 벌기 위해 여러 방안을 찾던 중 어느 나루터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고 여남은 이들과 같이 배를 타려고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높은 파도가 일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이때 아까 그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선비는 즉시 배에서 내렸는데 조금 후 심한 풍랑을 맞아 그 나룻배가 뒤집혀서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선비는 처음 적선의 대가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다시 방황하던 중 날도 저물고 배도 고파 먹고 잠잘 곳을 찾던 중 마침 그 인근에 커다란 동굴이 하나 보였다. 선비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얼굴과 몸집이 험상궂은 괴물이 나타나 선비를 잡아 먹으려 하였다. 이때 선비는 또 아까 그 노인이 말한 대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그 괴물이 선량한 청년으로 변하여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본래 옥황상제를 지키는 천국의 신선인데 피치 못할 죄를 지어 인간 세계로 떨어지면서 괴물로 변하였다. 하지만 나를 보고 춤을 추는 자가 있으면 너를 다시 불러올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당신(선비지칭)은 필시 나의 은인이요 하면서 소원하나를 말해보라고 하였다. 이때 선비는 가난을 이기고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였다. 바로 동굴 속이 쿵 하면서 오색구름이 피어오르더니 “내일 아침 고개 너머 산봉우리 둘째 바위 밑에 가면 평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고 하면서 그 청년은 신선으로 변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이제 두 번째 죽음에서 살아나게 된 셈이다.

날이 밝자 선비는 신선이 가르쳐준 산봉우리 바위 밑으로 달려갔다. 그 바위 아래는 수천 년 묵은 산삼이 선비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조심스레 캐서 장에 내다 팔았더니 선비는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었다. 엄청난 돈을 짊어지고 집에 도착하여 아내를 부르자 아내는 반갑게 맞이하며 선비께 고생하였다고 위로하였다. 하지만 또 어제 그 노인이 말한 점괘가 생각났던 것이다.

즉시 선비는 돈뭉치를 짊어진 채 살살 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루 밑에 시퍼런 칼을 든 도적이 웅크린 채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도적이 먼저 돈뭉치를 뺏으려고 선비에게 칼을 휘두르자 민첩한 아내가 다듬질 방망이로 도적의 뒤통수를 내려칠 때 되려 도적이 사람 살려 하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서 선비는 세 번째 목숨을 구하게 되고 평생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적선으로 생명을 구하고 더불어 가난을 벗어나게 된 교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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