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소방관의 기도
기고-어느 소방관의 기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19 16: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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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어느 소방관의 기도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방심치 않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화재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어/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고/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1958년 미국의 소방관 앨빈 윌리엄 빈이 화재에서 세 어린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쓴 것으로 알려진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다. 원작자 확인 전까지 작자 미상으로 전해져 왔는데 이제는 전 세계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처럼 쓰인다. 지난 6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화재 현장에서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려던 10개월의 새내기 소방관이 목숨을 잃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4번의 도전 끝에 합격해 지난해 5월 임용된 서른 살의 이 소방관은 구출된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아직 안에 있다”고 외치자 불길에 휩싸인 주택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고, 할아버지와 함께 쓰러진 채 발견됐다.

성 소방사 아버지는 “어렵게 소방공무원에 합격하던 날 밝게 웃던 아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성 소방사는 오는 생일을 열흘 앞두고 변을 당했다. 성 소방사 아버지는 “착실하고 주관이 뚜렷한 아들이었다”며 소방관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이 우리 부부와 여동생에게 ‘생일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동료들도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송현호 금산119안전센터장은 “막내인데도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이 매우 강했다. 화재, 인명 구조 현장에서 늘 남보다 앞서 행동했는데 애통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왔다는 고교 동창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맨 먼저 손을 들고 나서는 적극적인 친구였다. 그래서 구해 달라는 요청에 결코 망설임 없이 불길로 뛰어들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2019년 8월 전북 정읍시 농소 119 안전센터에 근무하던 정모 소방장은 울산의 한 저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루 뒤 그의 사물함을 연 동료들은 오열했다. 3년 전 경북 울주군에서 정 소방장과 함께 집중호우에 고립된 주민을 구하다 사망한 강모 소방사의 근무복이 영정처럼 걸려 있고 쪽지 한 장이 발견됐다.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왔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 남겨진 정 소방장의 휴대전화에는 강 소방사와 함께 당한 사고 내용과 이후 힘들었던 순간이 A4용지 24장 분량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공무원 중 가장 짧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다른 공무원보다 3배 가까이 많다. 강도 높은 야간 근무와 화재 진압 시 유해 물질 흡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의 희생에 우리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 해 평균 1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군인과 경찰 공무원들의 숭고한 희생도 소방관에 뒤지지 않는다. 국가보훈부 승격을 계기로 보훈에 대한 인식과 대상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보훈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와 그 후손에 대한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일상에서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도 부족함 없이 예우하는 ‘생활 보훈’, ‘현재형 보훈’이 돼야 한다. ‘제복을 입은 분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박민식 보훈처장이 초심을 잃지 않길 기대한다. 오늘도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일 소방관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순직한 성공일 소방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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