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자비존인(自卑尊人)
진주성-자비존인(自卑尊人)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3 16: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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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자비존인(自卑尊人)

17년 년 전 필자는 하동의 모 서원향사에 축관(祝官)을 맡게 되었다. 서원원임이 “이왕 오는 길에 초헌관이 경북 봉화에서 오는데 주차장에 나가서 좀 모시고 왔으면 좋겠다.”라는 부탁을 받고, 때마침 향사에 같이 참석하려는 진주의 모 어른을 모시고 동행하게 되었다.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나가니, 체구도 조그마하고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촌노(村老)가 갓을 쓰고, 다 떨어진 두루마기를 입고 내리는데 첫눈에 보기에 참 보잘것없었다. 동행했던 진주 어른이 첫말에 무시하고 “영감은 어디서 왔소?” “예. 저는 경북 봉화에서 왔습니다.” 반말과 존경하는 말씀들이 오고 갔다. 두 어른을 모시고 하동으로 가는데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자신이 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봉화 어른의 차분하고 겸손한 말씀은, 필자가 보기에 어찌 그리도 아는 것이 많고 조리 정연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외모만 보고 예사로 대했던 진주의 어른은 완전히 기(氣)가 죽었다. 2박 3일 동안 봉화에서 오신 어른을 모시고 서원 두 곳과 청학동 등을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영광스러웠던 일정이었다.

너덜너덜 다 떨어진 도포를 입고 다니셨는데 “옛날(오래된) 선비는 떨어진 도포가 그것을 증명하고, 선비인 척하는 최근의 신식 양반은 깨끗한 새 도포를 입은 사람이다. 떨어진 도포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어른이 대한민국 최고의 효자요 대학자였던 동애 권헌조(東厓 權憲祚) 선생이었고, 이때의 인연으로 필자가 생전에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자신을 낮춘다고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만찬에 중국의 관리들을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서양식 식사를 해본 적 없는 중국인들은 그릇에 담긴 손 씻는 물이 나오자 차인 줄 알고 마셔 버렸다. 그러자 여왕은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손 씻는 물에 손을 씻지 않고 같이 마셨다. 손을 씻는 예(禮)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를 배려해 물을 같이 마시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예인 것이다.

맹자(孟子)는 “공경하는 마음이 예이다.”라고 했고, 주자(朱子) 역시 “예는 공경과 겸손을 본질로 한다.”라 했다. 자비존인(自卑尊人)이라,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면 세상에 다툼이 없이 화평할 것이다. 섣불리 남의 외모만 보고 쉽게 무시한다거나 함부로 대하다가 낭패 보지 말고, 자신을 낮추면 높아질 것이요.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니,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배려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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