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연이 살아 있는 두미섬(頭尾島)을 찾다(3)
기고-자연이 살아 있는 두미섬(頭尾島)을 찾다(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3 16:0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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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자연이 살아 있는 두미섬(頭尾島)을 찾다(3)

또 다른 한 마을에서는 선사시대의 패총(貝塚: 굴 껍질 등 더미)이 광범위하게 발견되었다. 이를 본 학자들은 이런 채집유물 등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취락유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두미섬에 선사시대부터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가까운 인근의 욕지도 동향리와 상노대도 등에는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조개더미(조개 무덤) 유적들이 매우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인근 섬 중에서 가장 큰 두미도에도 선사시대부터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고려 때인 1300년대 후반에 ’설웅장군‘이 두미도 주변 남해안에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칠 때 그의 아내 ’난실‘이 “설웅장군’을 찾아 두미섬에 도착한 곳이 ‘절개마을’이고 이곳에서 스님이 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의 이름을 절개마을이라 이름을 부르게 된 동기나 시기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이 없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절(寺)개(불소치(佛所致):불교를 전하는 곳)라고 불렀고, 신라시대의 금동석가여래입상(현재 경주국립박물관 영남권 수장고에 소장)이 발견된 점을 보아 신라시대에도 이곳에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증명하듯 1896년 떼배를 타고 입도한 이들은 어떤 경로로든지 두미섬에 먹을거리가 풍부하다는 소문을 듣고 목숨을 걸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전부터 두미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1896년을 개척의 원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는 두미섬에 입도한 경로를 보면 1896년경에 사천과 남해, 고성에서 떼배(나무를 엮어 만든 배)를 만들어 목숨을 걸고 건넌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시기를 전 후 해서 많은 사람이 건너갔으나 대부분 거센 파도와 물결, 바람으로 인해 실패하고 사천에서 건너던 한사람, 남해에서 건너던 한사람, 고성에서 건너던 한사람만이 살아남아 두미섬을 개척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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