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환칼럼-'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을 방치할 것인가'
장성환칼럼-'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을 방치할 것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3 16:09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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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법무법인 담헌 대표변호사·한국외과연구재단 이사

장성환/법무법인 담헌 대표변호사·한국외과연구재단 이사-'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을 방치할 것인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그레샴의 법칙으로 명명되는 경제학 법칙이 있다. 화폐로서의 가치는 똑같이 정해 놓았으나 재물로서의 실질적 가치가 다른 두 재화(예:순수금화 vs 합금주화)가 있다면 사람들은 실질적 가치가 더 높은 재화(양화)를 보관, 저축하고 실질적 가치는 낮지만, 액면가는 같은 재화(악화)를 밖에서 사용하게 될 것이므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악화(화폐로의 가치 > 재물로의 가치)의 양이 늘어나고 양화(재물로의 가치 > 화폐로의 가치)는 점차 시중에서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즉, 시중에서 돌아다니는 악화가 많아지고 양화의 양이 적어지니 결국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2001년부터 23년째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한 피의자와 법률상담을 상세히 하고 사건을 맡기로 하였고, 사건 배경과 정보를 정확히 취합하여 보다 구체적인 변론 방향을 세워 최적의 변호를 하기로 하였는데, 바로 다음날에 다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변호사는 무조건 무죄를 받게 해 주겠다고 하여 막대한 수임료를 요구하길래 다 믿고 위임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음을 몸소 느끼면서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의뢰인에게 사건 진행 방향이나 예측되는 결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수임부터 하기 위해 수임에 유리한 정보만 알려주거나 침소봉대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그러한 변호사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져야 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며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변호사법이 정하고 있는데,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그저 변호사를 돈으로 사고 파는 상품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고, 그 현상은 점점 더해 가고 있다.

부동산중개수수료 3000만원을 받지 못한 공인중개사의 소송을 수행하기 위해 1년간 법원과 의뢰인 사무실을 오가며 업무를 처리했지만, 수입은 한 건에 3000만원을 받은 중개사의 1/10 수준인 300만원인 것이 변호사 업계의 실제 현실이다. 신규개업한 청년 변호사들 중에는 이미 최저임금 미만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는 공무원들이 부정과 비리에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가 과거에 비해 개선되면서 부정에 연루되는 공무원들의 수도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결국 중요한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정한 대우를 해주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이 작동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사회비용도 줄일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이다.

송사에 잘못 대응하면 사람의 재산이나 신분이 좌지우지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기도 한다. 형사사건은 물론이고 민사사건도 어떻게 방향을 잡고 대응해나가는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크게 차이가 나게 된다. 따라서 법률 전문직인 변호사는 의뢰인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사정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철저히 연구하여 변호를 하여야만 하는 사명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의료전문직인 의사도 매사 의료행위를 하면서 최선의 감염관리를 비롯해 최적의 의료행위에 임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이 작동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건강한 사회이다.

혹자는 변호사 숫자나 의사 숫자를 무작정 늘리면 법률서비스 시장이나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공급자들인 변호사나 의사가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로 인해 국민 편익이 증대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포화상태에 이른 변호사 개업 시장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이 이미 벌어지고 있고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의료 개원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지배하는 사회는 결국 국민 모두의 피해로 귀결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는 있겠지만, 생명, 건강 또는 재산, 신분을 잃고 나서는 모든 기반도 다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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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희 2024-03-08 15:22:04
칼럼 본지 1년후, 현재 자유대한민국에서 말도 안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과학적 의사 증원 문제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비가역적 터닝포인트를 지나고 있습니다. 다만 악행이 의도하지 않은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