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0)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0)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7 16:1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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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0)

▶영원히 살고자 불로장생(不老長生) 약을 찾았던 진시황(秦始皇:BC259~BC210·49세.재위:BC246~BC210·36년):‘후한서(後漢書)’에 이런 기록이 있다. ‘춘추 시대에 1,200개의 나라가 있었다. 242년 동안 죽은 군주가 36명, 망한 나라가 52개에 이르렀고 제후가 도망가 사직(社稷)을 보존할 수 없는 나라가 부지기수였다. 전국 시대에 이르러 남은 나라가 10여 개국에 그쳤다.’ 이 정도 교훈이면 통치자로 하여금 냉정을 되찾아 자신의 탐욕을 자제하고 백성을 생각하며 국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할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치 계층에 아무런 깨달음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들의 탐욕이 계속되는 동안 백성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결국 각국이 차례로 몰락하는 가운데, 국력의 발전을 도모하며 백성의 힘을 키운 진시황이 39세의 한창 나이에 천하를 통일했다.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인구의 3분의 2가 감소했고, 사회경제는 쇠퇴하여 기력이 모두 소진되었으니 진시황은 마땅히 ‘백성과 함께 쉼’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자신이 묻힐 무덤의 공사를 지시했는데, 완공 전 죽어 2세 황제인 호해 때에 완성됐다고 한다. 진시황릉은 특히 흙으로 만든 병사와 말이 대규모로 묻혀 있는 병마용갱(兵馬俑坑)이 유명하다. 자신의 능묘와 궁전을 건설하는데 백성들을 대규모로 동원했다. 황제가 묻혀 있다고 추정되는 봉분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병마용갱은 중국 산시성 시안시 린퉁구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진 유적지로 흙을 구워 만든 수많은 병사·말 등 모형이 있는 갱도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해 지금까지 4개 갱도를 발견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을 병사보다 크게 만들었다. 병마용은 전사·전차·말·장교·곡예사·역사·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발굴한 4개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있다고 추정하며,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 권력의 최고 위치에 서서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누구도 깨우칠 수 없고, 또 감히 그를 깨우칠 사람도 없다. 그는 죽지 않는 불로장생(不老長生)약 즉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제주도에까지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생각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그는 측근들에 의한 암살이 두려워 궁전 270여 곳을 짓고 지하도(地下道)를 통해 드나들며 그 위치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기록에 의하면 ‘여력을 동원하여 삼족(三族)을 멸하는 형벌을 행하고 태반이 부역에 징발되어 북으로는 장성을 축조하는 데 40여만 명, 남으로는 오령(五嶺)을 지키는 데 50여만 명, 아방(阿房)궁전과 여산(驪山)능묘를 짓는데 70여만 명이 강제 동원 되었다. 10여 년간 죽어 나간 백성이 지천에 널렸다.’

그가 죽은 곳은 지금의 하북성 광종현이었는데 때는 7월이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 ‘공자(公子) 부소(扶蘇)는 함양으로 돌아와 짐의 장례를 치르라. 내 손을 펴 밖으로 내 놓으라,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 승상 이사(李斯)는 진시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죽음을 알리지 않고 비밀에 부쳤다. 그러고는 진시황의 시신을 진시황이 타고 다니던 온량거(轀輬車)라는 마차에 싣고 진시황이 총애한 환관을 함께 태워 매끼 식사를 올리게 했다. 죽음은 승상 이사를 비롯하여 작은 아들 호해(胡亥)와 조고 그리고 총애 받던 환관 대여섯 정도만 알고 있는 극비 사항이었다. 진시황의 시신을 실은 마차는 그렇게 수도 함양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때는 7~8월 여름이라 마차 속에서는 시신이 썩어 냄새가 진동했다.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를 수레에 잔뜩 실어 냄새를 덮었다. 수도 함양에 도착한 후 죽음을 천하에 알렸다. 그는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환관과 승상이 음모를 꾸며 다른 왕자를 내세웠고, 허수아비 왕이었던 2대 왕 이후 진(秦)왕조는 19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으며 50세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인생무상이로다.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사는 것에, 투자하는 것에 비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는 매우 인색하다. 자신의 지난 삶을 성찰하고 겸허하게 사후를 준비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부담을 줄이는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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