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6)-시(詩) 스피치
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6)-시(詩) 스피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3.29 16: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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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
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6)-시(詩) 스피치

모든 생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것과는 다른 언어라는 코드를 사용하여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또한 공유한 기호와 절차를 결합하여 의미를 주고받는다. 의사소통의 기본 행위는 전하는 사람(Sender)이 받는 사람(Receiver)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기에는 분명 ‘품격과 솜씨’라는 것이 작용한다. 말재간, 입심, 언변을 떠올리는 화술(話術)과는 조금 다른 말하기의 기술, 서로의 마음에 가닿게 하는 소통의 기술을 말한다. 나의 목소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나의 소리를 특정하는 지문이 담겨있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내 안에 갇혀 나오지 않는 말은 가슴에 남아 신념이 되기도 하지만 평생의 한이 되기도 한다. 자기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나다움의 세계가 열린다. 자신의 목소리로만 찾아낼 수 있는 마음속에 있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쩌면 올바른 발성이라는 것도 사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다.

시 스피치는 자기의 생각에 시(詩)라는 옷을 입혀 마음을 담아내는 정서적 알맹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편안하고 따뜻하며 호감을 줄 수 있는 메시지로서 언어의 에센스 역할을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혁명가인 정도전은 “소매 속에 감춰놓은 몇 수의 시, 방황하는 인생을 위로해 준다”고 했다. 시는 우리의 인지 체계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함축적인 문구이다. 언어가 틀에 박히면 우리의 생각도 고착될 수 있다. 시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말하기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언어적 관성에서 벗어나 색다름을 창조하기도 한다. 시는 분석적인 뇌가 가 닿을 수 없는 감성과 지혜를 더해준다.

시 스피치를 통해 인생 후반 방향이 달라진 L씨의 사례는 필자에게 자부심이고 큰 기쁨이다. L씨는, 둘째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하객들을 향한 인사말을 배우러 왔다가 공명 발성법을 배우게 되었다. 경상도 특유의 투박한 억양을 부드럽고 울림 있는 목소리를 하고 싶어 몇 줄 시를 넣어 연습하다가 인사말을 시 낭송으로 바꿨다. 열심히 연습한 L씨는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인사말 대신 시 낭송을 했고, 하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L씨 스스로도 평민의 결혼식을 귀족의 결혼식이었다고 표현하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계기로 L씨는 시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문스피치 고급과정에 등록하게 되었고 시 스피치는 결국 L씨의 인생을 바꾸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L씨는 베이비붐세대의 6남매의 맏이로 가족들 챙기느라 제대로 자신을 돌보지 못한 억울한 심리적 피로(Psychological Fatigue)가 있었다.

시를 통하여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고 존재의 진리를 탐구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어려운 시절 배우지 못한 갈증이 마음 깊은 곳에 있음을 알았다. 시 스피치를 공부하는 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L씨는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60세의 나이에 경상국립대학교 학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부 면접 날 면접관으로부터 “여기 부모님 들어오시는 곳 아닙니다.”라는 말과 함께 “당신의 섣부른 결정이 젊은 학생 한 명을 낙오시킬 수 있습니다.”라는 면접관의 지적에 오히려 오기가 생길 정도로 큰 자극이 되었다. 그 후 합격통지를 받고 2021학번으로 대학생이 되었고 현재 63세의 나이로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현세대를 따라갈 수 없는 지식적 구조, 젊은 대학생들의 문화 풍조는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다.

작은아들 결혼식 인사말을 배우러 왔다가 시를 알게 되고 시 스피치를 배우다가 예순의 나이에 대학 진학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몇 주 전 신문과 KBS라디오를 통해서도 방송된 바 있다. 시 스피치는 삶의 재현을 넘어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언어학적 운율과 감정적 운율에 의해 생기 있는 말,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지성을 자극하는 시 스피치를 통해 새로운 말하기에 도전해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어려운 섬들이 있다. 시 스피치는 그 섬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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