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벚꽃이 윤슬로 피어나는 진양호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벚꽃이 윤슬로 피어나는 진양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02 14: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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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벚꽃이 윤슬로 피어나는 진양호

유턴 없는 일방도로를 행렬이 지나간다.
국화 다발 장식한 리무진이 선두에 서서
마중 나온 산 그림자를 짓밟고 간다.

고갯마루 보신탕집 벽화에 피어있던 분꽃이
마삭줄 꽃 진자리에 매달렸다.
단골집 지나쳐도 일어날 생각도 없다.
이승일일랑 이제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구멍마다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배웅 나온 인연들 주렁주렁 매달고
이승 구경 왔다가 귀가를 서두른다.
저 뜨거운 불덩어리가 돌아가는 입구라는데
대기시간 30분, 귀갓길도 정체가 심하다.

소각된 한 생을 사각 도시락에 빻아 넣고 보자기로 싼다.
삼가 고인의 무슨 복을 어떻게 빌어야 하나
‘도로 없음’ 표지판 앞에서 갈 길을 잃고 멈춰 섰다.

(김성진의 ‘귀갓길’)

모처럼 진양호 일주도로를 지나면서 맑은 호수와 벚꽃을 구경하였다. 인근 요양원의 노인들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움츠리고 있던 어르신들이 꽃향기를 맡고 생기가 솟아나길 바란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성진의 ‘귀갓길’이다.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평소 출생지 대평면의 역사와 ‘개구리 바위’ 등 전설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진주문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시 전문지 편집일을 보고 있다.

‘귀갓길’이란 제목만 보면 생업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가장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시어들을 보면 어둡고 묵직하면서 두렵다. 김성진은 대평면에 호수와 잘 어울리는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집은 그의 수려한 산문 같다.

시인은 작품 ‘귀갓길’에서 ‘길’은 무엇을 그렸을까. ‘길’은 나에게 무엇일까 생각게 한다. 장소와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길’은 누군가의 발자국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생이란 ‘길’ 위에서 사색하면서 꿈을 꾸기도 한다. ‘귀갓길’은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독자와 잘 소통되는 작품이다.

시에서 김성진은 아무도 지나칠 수 없는 죽음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몫만큼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러니 ‘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더 궁금해진다. 막다른 ‘길’엔 두렵기만 한 집단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살아가는 건 죽음을 향한 노정이다. 세상의 모는 것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기에 생명은 소중하다. ‘길’을 찾는 선택권이 우리에겐 없다. 작은 날벌레나 나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턴 없는 일방도로를 행렬이’ ‘국화 다발 장식한 리무진’ ‘이승 구경 왔다가 귀가’ 등에서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에 생로병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영생의 꿈이 있기 때문일 거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과의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김성진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김충규 시인과 박희섭 시인이 생각난다. 둘 다 김성진 시인과는 학교 선후배로 엮인다. 진양호와 맞닿아 있는 명석 출신이며 일찍 먼 ‘길’을 떠났다. 김 시인은 문예지 발행인이면서 문단에서 인정받던 시인이었다. 박 시인은 바라던 시인의 꿈을 이루고 석 달 뒤에 유명을 달리했다. 박희섭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길 기대해본다.

4월이다. 진양호 일주도로에 벚꽃이 지면 배롱나무가 꽃물을 품기 시작할 거다. 꽃은 어느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벚꽃이 윤슬로 피어나는 진양호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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