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아버지들의 서운한 마음(2)
기고-어느 아버지들의 서운한 마음(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04 15: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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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어느 아버지들의 서운한 마음(2)

솔직히 나는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처지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무사히 잘 마쳤다. 그리고 미약한 힘이나마 항상 내 고장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전 군민이 모인 행사장에서 ‘군민의 장’이란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또 공무원 퇴직 후에는 틈틈이 수필 공부를 하여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수필집 한 권과 향토사 관련 책도 서너 권 출간하였다. 크게 배우지 못한 나로서는 모두가 남다른 노력으로 이룬 결과라고 생각하며 항상 자부심을 가진다.

그리고 내 집은 합천읍 소재지에서 1㎞ 정도 떨어진 농촌 마을,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면적 200여 평 위에 지은 2층 양옥이다. 마당에는 잔디밭에 몇 포기 조경수가 가꾸어져 있고, 앞뒤로 작은 텃밭이 딸려 있다. 앞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가지 채소를 차례로 심어 가꾸고, 뒷밭에는 감나무 두 그루와 살구, 자두, 사과나무 등 유실수가 심어져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앙증맞고 풋풋하게 자라는 채소와 토실토실 커가는 과일들, 그리고 집 옆 산자락에 봄부터 피는 삐삐 꽃과 하얀 찔레꽃, 개망초꽃이 차례로 다른 풍경을 이루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 집터는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형제들이 함께 살던 곳이다. 나는 이곳에 사는 것을 아주 만족해하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어쩌다 한 번씩 다니러 오면, 집 안팎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휭하니 가버리기 일쑤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업적이나 내가 사는 집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자식들의 이러한 태도에 어떨 때는 괘씸한 마음이 들어 언젠가 내 생애 마지막쯤에 이 집을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거나 사회에 환원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며칠 전 마흔일곱 살인 맏아들이 초등학생인 손자를 데리고 와 이틀을 쉬어 갔다. 그런데 난데없이 집에 관심을 보인다. 펜션에 놀러 다녀도 여건이나 환경이 이만한 곳이 별로 없다며 퇴직을 하면 삼 형제 가족이 모여 놀기도 하고 쉬어가는 곳으로 매우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손자에게 생전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이것저것 자랑을 한다.

나는 속으로 ‘이제 나이가 드니까 아버지의 생활도 보이고, 고향 집도 제대로 보이는구나’싶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괘씸한 마음도 있고 아들이 말한 진심의 강도를 알고 싶어 슬쩍 딴전을 피운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이 집을 팔고 읍내 작은 아파트를 구해 편히 살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은 절대 아님)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이 집은 팔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정색을 한다.

나는 큰 자식이 지금이라도 내 삶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고향 집에도 관심을 두는 것 같아 평소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오늘의 제자리에 있기까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뛰었을까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벌써 퇴직 후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 조금은 씁쓸했다.

아들을 보내놓고 지금까지 괘씸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작은 행복감으로 혼자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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