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 명당은 어디에 있는가?
장영주 칼럼- 명당은 어디에 있는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3 16: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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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명당은 어디에 있는가?

최근 지도급 인사의 부모 묘소에 대한 파손 여부가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후손 절멸, 패가망신을 위한 정치적인 흑주술이라고 규정했다. 방대한 경찰조사 결과 그의 당선을 돕기 위해 묘소의 기운을 보하려고 문중 차원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생 명 기(生 明 氣)’라는 글자를 적은 돌을 묘소에 파묻어 보기(補氣)하는 풍수지리 적 의도인 듯하다. 문중의 어른으로 알려진 주도자의 한 사람은 위의 글자를 묘소에 묻는 방편으로 특허까지 받았다고 한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의미이다. 바람과 물과 땅 기운을 효과적으로 취하여 기운을 얻겠다는 오랜 경험에 의한 동양의 생활 지혜이기도 하다. 풍수지리는 삶의 주거지를 선택하는 양택풍수와 묘소를 쓰는 음택풍수로 나누어진다. 현재는 대부분 음택풍수에 치우쳐 후손들의 발복만을 덧대어 맹신하는 경우가 잦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모여 보이는 물질이 된 것이 ‘몸’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버지 격인 하늘에서, 몸은 어머니 격인 땅의 물질에서 왔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천부지모(天父地母)철학’이다. 그 마음과 물질이 명이 다하면 각기 하늘과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대자연의 에너지 법칙이다. 선대의 주검을 물이 잘 빠지고 잔디도 잘 자라는 양지 녘에 정갈하게 모시는 것은 당연한 효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묘를 쓰는 후손의 마음이 사나워 무리한 복을 기원한다면 오히려 머물렀던 생기마저 사그라질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법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하니 명당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4월 10일, 일제강점기 미국과 유럽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황기환’ 애국지사(1886~1923)의 유해 봉환식이 거행되었다. 그의 유해는 미국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에 묻혀 있었다. 자손이 끊겨 유해 반환과정이 어려웠으나 교민들의 정성과 국가보훈처의 오랜 노력으로 성사되었다.

황기환 지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보다 11살 연하로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0대 후반인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미군으로 자원입대하여 유럽 전선에서 중상자 구호 작전에 투입된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자 김규식의 제안으로 프랑스 파리의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부에 합류한다. 1919년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영국까지 흘러들어온 한인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황 지사가 영국 정부를 설득해 35명을 프랑스로 이주시킨다. 1920년 1월 프랑스 파리 주재 ‘한국선전단’ 선전국장으로 불어 잡지를 창간하고 파리대학 교수를 초청해 인권옹호회를 조직하여 언론 등 세계 각국에 한국 독립을 호소한다. 그해 10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언론인 멕켄지와 윌리엄스가 조직한 ‘한국친구회’에 동참한다.

1921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주차영국런던위원으로 임명된다. ‘영일동맹과 한국’이란 서적을 편집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것은 다름 아닌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판한다. 그해 5월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신부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친우회’를 조직, 한국의 외교 사업을 후원한다. 온갖 고초 속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던 황기환 지사는 1923년 4월 17일, 이역만리 타국에서 쓸쓸한 주검이 되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으려고, 곤궁한 동포들을 위해 평생 진력하신 그 마음에 감동한 민관의 협동으로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 왔다. 서거 100년 만에 국민적인 환영을 받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중 한 곳인 ‘대전국립현충원’에 이장되었다. 드디어 모국의 산하에서 영면에 드신 것이다. 그토록 밝고 큰 마음에게는 자신의 몸이 묻힐 명당을 따로 구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마음’이 잠시 머물었던 ‘몸’이 묻히는 곳은 당연히 고인 생전의 마음결에 따라 묘소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다. 결코 바람과 물과 땅의 성분 여하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다. 큰 인물이라면 궁중의 암투를 연상케 하는 후손 절멸이니 패가망신이니 흑주술이니 등등 음습한 분위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저주의 화살은 결국 쏜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또한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한반도의 전 국토를, 나아가 모두의 고향별인 지구 구석구석을 가난과 전쟁이 없는 평화의 명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생의 필요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명당관이다. 일체유심조이니 명당 또한 내 마음이 만들어 낼 뿐이다. 사람이 평생을 환한 마음을 썼다면 유택 또한 자동으로 명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제아무리 유명한 지관이 지목하였어도 후손이 잘될 리 만무하다. 명당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국민의 가슴에 묻히는 것이 최고의 명당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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