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보잘것없는 빗방울이 물꼬를 튼다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보잘것없는 빗방울이 물꼬를 튼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6 15: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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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보잘것없는 빗방울이 물꼬를 튼다

입춘 지난 해는 점점 길어져
한낮에는 앞이마가 따뜻해지는 하루였다
십리나 시오리 길을 새벽같이 걸어
오일장에 온 사람들 벌써
돼지국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로
붉게 저무는 하루치의 산그늘을 아쉬워했다
하루해는 그래도 채워야 한다는 듯 장바닥을
어슬렁거리는 남정네들
투전판이나 어물전 근방으로 몰려다니기도 하고
아낙네들 튀밥이나 건어물 같은 것들 머리에 이고
이미 불콰해진 남정네들 찾아
주막이나 국숫집의 여기저기
기웃대기도 했다
해 지기 전에 서둘러야 할 장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발을 내딛어야 할
설밑의 대목장날이었다

(양곡의 ‘덕산 장날’)

비에 젖은 ‘덕산’의 산과 들은 온통 연두색이다. 덕천서원과 덕산중학교 ‘경의관’은 감나무를 사이에 두고 있어 ‘경의사상’이 시대를 넘나들고 있다. 덕천서원 앞 은행나무는 빗방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원을 찾는 관광버스를 맞이하고 있다. ‘덕산’에는 남명이 있고, 동학이 있고 윤이상의 생가터와 천상병 ‘귀천’ 시비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덕산’은 영남 우도의 정신적인 주춧돌이 있는 곳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양곡 시인의 ‘덕산 장날’이다. 지리산 산나물 등 많은 먹거리가 모여드는 오일장이다. ‘덕산 장날’은 첫 줄부터 중산리와 대원사 계곡물이 모여드는 것처럼 독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개천 문학’으로 시단에 나온 양곡 시인은 소리당(솔당)마을에서 태어났다. 솔당 마을의 위치는 시천면이지만 행정구역은 단성면에 속한다. 덕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이처럼 양곡은 두 개 면에 걸쳐있는 ‘경계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기에 ‘경계인’이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빗방울이 다듬어놓은 길을 사이에 두고 그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인근의 어르신들은 분주하다. 버스를 타거나 ‘십리나 시오리 길을 새벽같이 걸어’ 면 소재지로 모여든다. 버스엔 등교하는 학생과 등산객과 지리산자락의 농산물이 자릴 잡고 있다. 아침 일찍 보건진료소나 의원 앞에서 기다리는 노인들, 물리치료를 받거나 ‘어물전 근방으로 몰려다니기도 하고’ 모처럼 친구를 만나서 ‘돼지국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로’ 서로의 눈빛을 나눈다. 빗방울이 내리는 시장에서 국밥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젓가락에 걸친 흑돼지 맛과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붉게 저무는 하루치의 산그늘’ 내리깔리면 ‘장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발을 내딛’는다.

조종명 시인의 ‘덕산장 장마’ 시비가 장터를 지키고 있다. 남명의 후손인 조 시인의 시는 ‘오전부터 젖었다’로 시작되는데 시비 구경하면서, 덕천강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주변에 잘 단장된 산책로가 있어서 많은 이가 찾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가 바로 산청군 시천면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동학파 교단이 설립되었으며, 농민들의 집회와 시위가 이루어진 곳이다. 시천면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어서 역사학자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이다.

양곡 시인은 경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양곡은 산청문화원 사무국장을 거쳐 산청문인협회장을 역임하고 요즘은 동의보감촌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리산의 보잘것없는 빗방울이 수곡장터를 지나 진양호로 모여들어 남강을 이룬다. 이처럼 양곡은 동시대적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산청 문학의 장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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