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하동군 차 역사를 바로 보라
도민칼럼-하동군 차 역사를 바로 보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19 16: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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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한국차학회 고문
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한국차학회 고문-하동군 차 역사를 바로 보라

2023년 5월 4일부터 31일간 하동차세계엑스포는 어느 지역보다 세계 차 행사가 잘 치러질 것이고 알찬 노력으로 한국 차 문화를 세계인에 보이겠다는 야심에 격려를 보낸다. 필자 역시 하동군 명예군민 일원이고 하동차세계엑스프 자문위원이란 칭호를 받아 성원을 기원하면서 조금 서러워진다. 녹차는 일반 식품과 달리 하나의 제품에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다섯 가지 맛이 온도에 따라 다르고 차의 멋, 차의 정신이 포함된 식품이다. 차를 만듦 자체 기법이 나라마다 다르고 차 음료수로 만듦 과정도 다르다. 한마디로 까다로운 자연식품이고 차를 마시는 사람 자체가 까탈로의 차인이라 호칭한다.

하동 차 농가는 자연과 더불어 까다로운 야생차나무로 가꾸어 온 정성과 전통 보존에 격려 보낸다. 아울러 1200년이란 세월 동안 성숙되게 가꾼 대한민국 차 문화와 관계된 역사를 하동세계차엑스포란 이름으로 1개월 행사에 150억 원이란 거액의 국비를 투입하여 모처럼 행하는 행사가 더 희망찬 세계 속에 K-차 대표행사가 되기를 기원한다. 필자는 차를 애호한 사람으로 행여 돈 장난 행사가 될까 염려되어 하동군과 엑스포조직위원회에 건의 겸 질문하오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첫째 차 씨를 당(唐)에서 전래한 사람은 귀당사 대렴(大廉)인데 추원비에 왜 귀당사 김대렴(金大廉)으로 기록했느냐, 둘째는 하동 쌍계골에 처음 제다법을 재발굴한 사람을 청파 조병근(계곤)이라 몇을 밝힌 바 있는데 청파 조병근을 부정하는 이유를 묻는다. 셋째는 필자가 하동세계차엑스포 자문위원인데 3년 동안 자문회의를 열어야 자문할 것인데 이름 좋은 개살구에 명의만 차용했는지 묻고 싶다.

본건 설명 전 추원비 건립과정은 한국차인연합회(한국차인회)가 주최한 2차 중요사업으로 총회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1981년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진주촉석루에서 선포하고 그날 김대렴공 추원비를 제막식 쌍계사 입구에 제막했다. 반대한 이성규 하동군수 및 관계 직원 불참했다. 본 사업 추진위원장 부회장 박종한 님 동 회 감사 겸 추진총괄사무총장 김기원이 총회에서 위촉받고 필자가 세웠다. 본 사업의 역사적 고증은 이성근 원장(전 한국정신문화원)의 심사후 수행했다. 그리고 필자는 역사학자, 역사교수는 아니지만 농업 발달사를 강의했고 역사학을 배운 바 있음을 밝힌다.

첫째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귀당사 대렴(大廉)이 인덕전에 받아온 차 종자를 왕명으로 지리산록에 심었다. 삼국사기에 귀당사 대렴으로 기록했는데 왜 추원비에 김대렴(金大廉)기록하였느냐. 필자는 추원비 안을 1980년 11월 20일 윗어른들과 초안하여 1981년 총회에 결의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金富軾 著) 인명록 문제로 당시 이선근 원장(전 한국정신문화원)에 고증을 받았다. 원장실에 전문학자 2명이 참가했다 이 원장은 “삼국사기 기록법은 중국 사마천의 역사 기록법 그대로 응용했다” 왕족은 성(姓)을 기록 아니하는 것이 원칙, 중국은 사자(史)를 쓰고 다른 나라는 기(記)로 표기라 설명했다. 신라 흥덕왕 때는 진골이 최성권세기로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호칭했다. 당시 황제국 당나라 사신 귀당사로 가는데 성도 없는 대렴이란 자을 보냈다는 생각 자체 잘못이다. 당시 신라는 육촌 성이 있었다.
둘째 청파 조병근 옹은 중국에서 해방 이후 귀국한 사람으로 화계골 차 제조법을 처음 보급한 사람이다. 필자는 1956년 쌍계사 뒷산 벌목 현장감독 기간에 몇 차례 만났고 현 화계동천 근처 민가는 거의 없었다. 당시 야생차나무는 농사에 방해되는 나무로 제거하였다. 청파는 이승만 대통령에 작설차를 만들어 보내 상여금을 받아 품삯으로 업자들에 일당으로 주었고 그 뒤 골짝 사람에 속아 처참하게 사망했다. 하동군과 세계차엑스포조직위원은 하동차 제다법 원조를 세계인에 거짓으로 소개를 하겠는가. 걱정되고 마음 아프고 당황되며 뿌리는 찾아야 한다. 셋째는 김기원은 하동차 발전에 기여했다. 야생차 축제 창립에 조언했고 하동 차 민요를 처음 채록했다. 공덕비는 못 세워 줄지라도 욕되지 아니하게 대접하는 것도 차의 정신이다. 차 문화는 체험만이 이해하는 비법이다. 뿌리 없는 큰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민족이 있다 하겠느냐. 조용조용히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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