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선-그때 쥐들과 벌였던 싸움(1)
강병선-그때 쥐들과 벌였던 싸움(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4.20 16:1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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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그때 쥐들과 벌였던 싸움(1)

초등학교 3학년 때인 듯싶다. 이솝 이야기책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쥐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 고양이가 나타나 밤만 되면 어김없이 한 마리씩 잡아갔다. 이에 쥐 나라 왕은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묘안이 없어 고민하는데 어느 신하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왕으로선 뛸 듯이 기뻐했지만, 막상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나섰던 배짱 있는 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걱정만 하다가 말았다는 얘기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동물 달리기 대회를 열어 12마리 동물을 뽑아 육십갑자인 날(日)과 달(月)과 년(年)을 상징하는 주인공을 뽑기로 했다. 영특했던 쥐는 힘이 세고 오래달리기 명수인 소머리에 올라탔다. 뿔을 잡고 앉아 있다가 결승선에 이르자 제일 먼저 뛰어내려 통과했다. 이로 인해 육십갑자 제일 첫 번째인 갑자(甲子)란 자리를 차지했고 소는 두 번째 을축(乙丑)이라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쥐 한 마리가 일 년이면 수백 마리나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고 하니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과 결혼하면 재물뿐 아니라 자손도 번성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결혼할 때도 남녀가 맞선도 필요 없다 했을까. 이처럼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치고 게으른 사람이 없고 영리하며 부지런해서 부자로 잘 산다고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쥐에 관한 긍정적인 얘기만 하다 보니 쥐에 관한 예찬론자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성싶다. 그렇지만 실생활에선 앙숙 관계였다. 그때 청년 때는 시골에 살면서 하루도 쉴새 없이 쥐들과 싸움을 벌였었으니 말이다. 쥐들과의 전쟁 얘기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할 때인 고향에서부터 시작된다. 옛날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은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그리고 부엌 한 칸이었으니 흥부네 오막살이 집과 비슷했다. 초가지붕에 황토를 짓이겨 바른 벽이었으며 세월을 묵은 집이라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지고 쥐들이 드나들기는 별 애로 사항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쥐들과 동거하는 생활권 안에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했으니 그때는 반찬을 넣어두고 보관하는 찬장이 따로 없었다. 끼니때 먹고 남는 반찬이나 음식물을 살강 위에 얹어놓고 좀 더 큰 그릇이나 바가지 같은 큰 그릇으로 덮어놓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개수대인 살강 위에 큰 그릇으로 덮어놓은 음식물을 쥐들이 훔쳐 먹기 위해 덮인 그릇을 열어젖히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방에서 잠자던 식구들의 수면을 방해했다. ‘야 이놈들아!’ 하고 고함을 지르면 처음에는 도망갔는지 조용했다.

그러다가 영리한 쥐들은 이불속에 드러누워 고함만 지르는 걸 알아채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덮어진 그릇을 밀어내느라 달가닥거리는 소리만 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앉아 부엌과 안방 사이에 있는 샛문을 두들겨 대며 고함쳐도 꼼짝 않는다. 덮어놓은 바가지와 큰 그릇들을 기어이 밀어내고 훔쳐 먹겠다는 태세로 계속 달그락거린다. 기어이 겨울 찬 공기를 마시며 샛문을 열고 쫓아 나가는 것처럼 해야만 이놈들은 그때야 줄행랑을 쳤다.

쥐들과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하던 어느 날이다. 어머니께서는 반찬과 음식물들을 사용하지 않는 큰 가마솥 안으로 옮기고 나서 쥐들과 벌였던 살강 쟁탈전은 끝난 듯했다. 그러나 엉성하게 발라진 흙벽을 뚫고 큰방이나 작은 방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당시에 안방이나 내가 사용하는 작은 방도 모두, 지금처럼 벽지를 바르지 않고 비료를 담았던 포대(包袋) 종이였다. 울퉁불퉁한 벽에 두꺼운 종이로 오랜 세월을 두고 겹겹이 바른 것이라 벽에 딱 붙지 않고 종이와 흙벽이 따로따로 노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저네들 딴에는 재미있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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