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4)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1 16:5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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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4)

▶고대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121.4.26~AD180.3.17·59세.재위:AD161~AD180·19년):원래 이름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로 로마 명문가 출신이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어 조부가 키웠다. 친자가 없던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는 17세의 마르쿠스를 양자(養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마르쿠스 황제 딸과 약혼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란 새 이름을 얻었다. 40세까지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로마 제국 통치술을 익혔다. AD161년 양부(養父)가 세상을 뜨자 로마 16대 황제에 올랐다. 재위 중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사령관이 반역을 꾀하다 살해된 뒤 관련자를 살려주는 자비를 베풀었다. 다섯 자녀를 낳았으나 넷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남겼는데 그는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哲人)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철인 정치’란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위해 진리와 선(善)을 아는 철학자들이 정치하는 걸 말한다. 이 책에서 황제는 정무를 볼 때나 전쟁에 나갔을 때 자신이 겪은 일을 일기이자 철학적 성찰로 풀어내고 있다. 보통 ‘명상록’이라고 부르지만, 일기의 필사본에는 그리스어로 ‘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쓴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하려고 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황제의 역할이나 정치에 관한 언급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자기의 결함을 이겨내기 위한 금욕과 절제, 자연과 일치된 삶 등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이런 그의 지향이 스토아학파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후대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목은 ‘어머니 덕분에 경건과 선심(善心)과, 나쁜 짓, 나쁜 생각을 삼가는 마음과, 검소한 생활 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고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주변 사람들이 비록 약하다 해도 화를 내거나 미워할 수 없다’는 구절도 눈에 들어온다. 철학적 성찰을 거듭한 결과 ‘아무도 나를 추악한 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자신감도 피력하고 있다.

또 하루하루 지나치게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르침도 있다.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은 십중팔구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버리게 되면 여가는 늘고 마음의 동요는 줄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지금 이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자문(自問)해 보아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초심을 지켜라’ 같은 말은 그저 수사(修辭)가 아니라 우리 삶을 세우는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상록’은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이나 가장 짧게 산 사람이나 죽을 때는 똑같은 것 하나를 잃는다.’, ‘가장 중요한 전투는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벌이는 전투이다. 격렬한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만큼 안전한 요새는 없으며, 삶의 질은 생각의 질에 달려있다.’, ‘삶이란 전쟁이며 나그네의 짤막한 머무름이요, 후세에 남는 명성이란 망각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가 나아갈 길을 이끌고 지켜줄 힘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 오직 하나, 철학의 힘뿐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년에 두 번 이 책을 읽으며 마음과 몸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그는 진중(陣中)에서 질병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다음과 유언을 남겼다. ‘떠오르는 태양에게 가라, 내 태양은 저물고 있으니… 나를 위해서 울지 마라. 차라리 수많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 역병을 생각하라.’ 과연 성인답고 황제다운 명언이 아니던가.

▶고대 로마 제국의 제19대 황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AD133.1.30~AD193.6.1.·60세):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부유한 원로원 의원으로 콤모두스 황제에게 추방당했다. 이후 콤모두스 황제는 AD192년 12월 31일에 살해당하고 페르티낙스가 제위에 올랐으나 AD193년 3월 말에 레토가 이끄는 황실 근위대에게 살해당했다. 이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근위대장 레토와 1만 명의 근위대의 추대를 받아 페르티낙스의 장인 플리비우스 술피키아누스와 겨루어 승리해 옥좌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판노니아 총독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리아 총독 페르켄니우스 니게르, 브리타니아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황제를 자칭했다. 그리고 세베루스와 알비누스가 연합해 세베루스의 2개 군단이 남하하며 해군이 배반하자 재위 3개월 만에 그를 추대한 것을 후회하던 근위병 몇 명에게 살해당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인가? 내가 누굴 죽였단 말인가?’ 2000년 전 인물이 남긴 조언은 AI가 전 세계를 잡아 삼킬 듯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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