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수행자의 삶
칼럼-수행자의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2 16:0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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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수행자의 삶

비구를 걸사(乞士)라 한다. 구걸 걸(乞)자와, 선비 사(士), ‘구걸(求乞)하는 선비’라는 뜻이다. 구걸의 표현은 탁발(托鉢)이란 말로 대체되며, 걸인(乞人)과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 탁발은 수행자가 음식을 구하는 행위를 통하여, 아집과 아만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선비의 모습을 잃지 않고, 여법하게 살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간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면서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며 산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이리저리 휘둘릴 일이 없어서 좋고, 잔머리 굴릴 일도 없어 좋다. 항상 납작 엎드려 살며 절에만 머물고 있으므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세상에 없는 듯이 살고 있으니, 누가 뭐라 하지도 않고 눈치 볼일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간섭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는 사람도 없는, 무명인으로 살기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안으로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밖으로는 온 힘을 다해 남을 돕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말 한마디가, 남을 흥하게도 하고 나도 흥하도록 하는 것이다. 남에게 말 한마디라도 이익과 기쁨을 주고자 노력하며,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라도 자애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애를 쓰며, 남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기를 원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비구는 걸사(乞士)다. 빌어먹는 선비다. 불자들은 비구에게 음식과 의복과 모든 것을 베푸는 보살들이다. 그래서 비구는 불자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지시하거나 혼내거나 잔소리하지 않는다. 불자들이 방문하면 가급적 밖에 나가 따뜻하게 맞아주고, 불자들이 절을 떠날 때도 가급적 밖에 나가 전송해준다. 수행자들은 잘난 척하지 않는다. 암만 내가 잘나봤자,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고, 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줘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예절의 기본 정신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 수행이 되지 않으면 깊은 산속 토굴에 혼자 있어도 고요하지 못하지만, 철저한 수행으로 텅 빈 마음이면 시장 한복판에서도 고요하기만 한 것이다. 자비심이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중생들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산란하여, 늘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휴식한다며 잠만 잔다. 그것을 혼 침이라 하며, 혼 침은 어둡다는 뜻이다. 깨달은 사람은 산란심이 없어 깨끗하다. 깨끗하면 피곤하지 않다. 피곤하지 않으면 밝기 때문에 낮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항상 불안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비구는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며 살아간다. 슬픈 말, 기쁜 말, 부모, 형제 친구에게도 말 못하고,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말까지 모두를 들어준다. 비구는 여여(如如)한 마음으로 만나는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란,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심을 말한다. 비구는 어려움을 피해 가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힘을 빌려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적용됨을 철저히 공부하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남의 허물은 곧 내 마음의 허물이자, 나의 허물이라 보기 때문이다. 흙에는 반드시 생명체가 살고 있다. 바위틈에 소량의 흙만 있어도 초목은 그 척박한 곳에 뿌리내리고,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불평 않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자. 우리의 임무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이라,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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