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어른이 된다는 것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어른이 된다는 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3 15: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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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시인·수필가-어른이 된다는 것

일상의 세세한 부분을 포착해 삶의 미묘한 페이소스를 끌어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태풍이 지나가고’를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었다. 사실 그 영화는 몇 년 전 이미 본 영화였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깊은 사유를 끄는 영화는 간혹 그러기도 한다.

주인공은 아버지 유품을 몰래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을 도박으로 모두 날린다. 이혼한 아내와의 약속도 삶의 우선순위에 밀려 매번 어긴다. 아들에게 신발을 사 주기 위해 일부러 흠집을 내고 가격을 흥정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직장인 흥신소 대표는 직원들에겐 따뜻하지만 의뢰인들에겐 일을 부풀려 더 많은 돈을 뜯어낸다. 직원은 그런 대표를 속여 중간에 돈을 가로채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주인공의 어머니조차 아무도 보지 않을 땐 쓰레기를 아무 곳에 버리기도 한다.

인간이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뿐만 아니라 적당한 ‘악’도 포용하려는 제작자의 넉넉한 관용이 깔려있다. 사소한 악을 기꺼이 수용했듯 우리가 ‘루저’라고 부르는 인물들도 사회 일원으로 끌어안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성공한 어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사는 세상에서 이런 메시지는 많은 의미가 있다.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설령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전 감독은 첫 장에 이런 문장을 썼다. “모두가 꿈꾸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의식이라도 하듯 영화에 이런 대사도 함께 끼워 넣었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영화 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좇는 한심한 아들을 향해 던진 어머니의 다정한 위로 말이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주인공은 아버지와 똑같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물론, 주인공의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큼은 성공한 어른이 되고 싶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의식을 바꾸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은 무엇을 말할까.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 어른의 정의를 나이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과거엔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공경하던 시절도 있었다. 살아온 만큼 경험과 지식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시대는 바뀌어 경험과 지식은 나이와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평균 수명 또한 두 배 이상 늘어 노인의 기준도 달라졌다.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른 대접 받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차라리 나이는 쇠퇴를 의미하는 말이다.

얼마 전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진주 사람들이라면 그 어른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선생님의 삶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존경을 표하고 있다. “돈이란 게 똥하고 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선생님의 삶은 이 시대의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된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우리에게 그런 어른은 되고 싶은 우상일 뿐이다. 영화에서 말했듯 되고 싶다고 모두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위치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다워야 어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어른의 인격을 갖추는 일이다. 물론 어른다워야 한다는 말은 사회가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욕심을 비우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일인지 모른다.

지금 나는 내가 꿈꾸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어차피 완벽한 어른은 되지 못하겠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내가 원하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이다. 영화를 다 보고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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