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알기나 하고 저럴까
진주성-알기나 하고 저럴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09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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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알기나 하고 저럴까

옛 살던 우리 마을은 서른두 집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그나마 위 땀과 아래 땀으로 나뉘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위 땀의 일곱 집 전부가 우리 윤가들이다. 모두 8촌 이내다. 그래서 어느 집이든 제사가 들면 일곱 집 식구가 함께 제사를 모시는데 음력 9월 초이튿날 제사는 그러지 못한다. 일곱 집 모두가 집집이 제사기 때문이다. 일제 강제징용으로 갔다가 1945년 음력 9월 초이튿날 같은 배를 타고 오다가 배가 침몰해서다. 앞날 배에 모두를 먼저 보내고 아버님만 다음날 배로 부산항에 닿았는데 전날의 배는 부산항에 닿지 않은 것을 알았다.

진주 일신여자고등학교 출신인 백모님이 남편을 찾아 나오겠다고 일본으로 가셨다가 두 달 봉급이 부쳐 오고 난 이후에는 봉급이 오지 않았다. 현지에서 강제징집을 당했다는 편지를 유일한 유품으로 남겼다. 신식공부를 했던 덕분에 집안사람을 모두 찾을 수 있었고 귀향증도 받아서 잠시 함께 모여 군납품 모포 공장을 운영하다가 해방을 맞아 같은 날 함께 배를 탔으나 돌아오지 못하여 양위분의 제사를 내가 모신다. 일본 선주는 배를 사고도 남을 만큼 비싼 승선비를 받고 출항하여, 밤중에 일본인 선원들은 그들의 계략대로 따라온 배에 몰래 옮겨타고 귀국선을 침몰시키고 내뺀 것이다. 유사한 사건의 생존자가 증인이다.

강제 근로정신대 ⸱ 위안부? 아래 땀의 명☓ 댁의 딸은 고향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산에 눌러앉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후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금☓ 댁의 딸도 부산까지는 왔다는데 그도 끝내 고향 마을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남의 이야기는 쉬쉬해도 어렴풋이 들어 알지만 정작 우리 종고모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조부님들의 언명이 후손들의 입을 봉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야 할 사람은 지켜주지 못한 우리인데 원한과 서러움까지 그들에게 짊어지웠다.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아녀자들의 수모를 기억하고 있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입을 닫고 무덤으로 갔다.

근로정신대 ⸱ 위안부. 매스컴에 나온 그들이 전부라면 차라리 덜하겠다. 수천? 수만? 속아 가고 끌려가고 그러지 않으려고 조혼을 서둘렀다. 어머님은 열일곱 살에 시집왔고 당숙모는 열네 살에 시집왔다. 중북부지방 사람들은 그 속을 모른다. 영남과 호남의 남해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처녀공출’ ‘훌치기’ 알기나 하고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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