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단상-나의 집 나의 정원-지리산에 기대다
전원생활의 단상-나의 집 나의 정원-지리산에 기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18 16: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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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
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나의 집 나의 정원-지리산에 기대다

‘버킷리스트(The Bucket List)’는 2007년에 개봉한 랍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화이다.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모아둔 ‘Bucket List’라는 목록을 작성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난한 자동차 정비사 카터와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가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카터가 버킷리스트를 쓰고 행할 수 없음에 쓸쓸해 하자 가진 게 돈뿐인 에드워드가 직접 실행에 옮기자고 제안을 한다. 망설이던 카터는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버킷리스트를 한 줄 한 줄 지워나간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하기까지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가족이 있고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고 사업도 있다. 시한부 인생이라 세계 여행에 무리라는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영화가 상영된 후에 버킷리스트 만들기가 한때 유행이 되었었다. 필자도 직장생활을 마감할 즈음에 ‘인생 2막을 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깊이 생각했다. 이 영화처럼 절망적인 환경이 아님을 감사하면서 ‘은퇴 이후 하고 싶은 실행 가능한 다섯 가지’를 버킷리스트 목록으로 작성해 보기로 하였다. 중요한 관점은 ‘실행 가능할 것, 삶에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 감동적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오롯이 나 자신이 평소에 간절했던 소망’을 이룰 것 등이다.

‘남자들이 하고 싶은 것 중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전원주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상되는 골칫거리가 한둘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전원주택을 평소 간절히 원했기에 나의 버킷리스트에 포함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발품 하며, 드디어 유레카(Eureka) 하면서 정착하게 된 곳이 이전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지리산 남단 자락 ‘하동’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풍수지리와 배산임수, 무릉도원의 조건을 상당히 갖추었다고 보는 곳이다.

대부분 남자는 노후에 귀촌해서 살아 보는 것을 ‘로망(Roman)’이라 하지만 꿈꾸는 자의 1%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주위 친구나 친지들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결과는 없다. 그들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만큼 현실적이며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상존하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도시에서 열심히 살아서 가족도 부양하고 돈도 벌고 은퇴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도시를 맡기고 자연에서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검토된다면 얼마나 건강한 도농 상생의 사회가 될까…. 도시의 주택난이 해결되고, 소멸하는 농촌도 부활하고…. 1석 10조는 될 것이다.

귀촌하여 전원생활을 해 보면 생각만큼 녹녹지 않다. 평생 해 보지 않았던 텃밭 농사도 해야 하고 가끔 집수리도 직접 해야 하며 이웃과도 잘 지내야 하고, 상상 밖의 도전이 곳곳에 도사리지만 이것 역시 즐겨야 하는 귀촌자들의 덕목이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6차산업도 이수하고 목공, 요리, 발효, 산야초 등 관련 학교도 다녔고, 현재는 정원사 양성 교육도 이수 중이다. 배우고 공부하면 기회도 생기고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하는 공간의 범위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 시간 대부분은 텃밭과 정원 일에 몰입한다. 남의 정원을 보면 주인의 성향과 부지런함, 노력, 애증이 한눈에 보인다. 정원은 주인의 손길이 가는 만큼 이뻐지고 다듬어지고 모양을 뽐내는 것이다. 심고 뽑고 옮기고 물주고 대화하고 칭찬해 주고…. 매일매일 미세한 정원 식구들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생명과 자연의 섭리, 삶과 죽음의 원리를 알아간다.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즐기면서, 앞날의 계획도 세우고 실천해 보는 것은 노후 생활의 풍족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정원의 가치와 기능은 다양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의 의지대로 만들어 가면서 그 속에서 휴식과 평화와 안정감을 제공해 주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형태의 식물들을 내 손에서 키워내는 과정은 실로 감탄의 연속이다. 이렇게 이쁘게 자라서 무한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장미가 만발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푸른 잔디 마당에서 작은 음악회와 차모임을 기획하고,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하는 날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정원은 나의 일상의 밀접한 놀이 공간이자, 문화 공간이다. 엄동설한을 제외하곤 매일 꽃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식재하고 내일을 기다리는 나의 일상은 지금 받는 축복이다. 전원주택이 나의 버킷리스트가 된 것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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