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숙맥(菽麥)의 난(亂)
진주성-숙맥(菽麥)의 난(亂)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18 16: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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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숙맥(菽麥)의 난(亂)

친구들이 보내오는 글은 혼자 보기 아까운 유익한 것들이 많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과 흡사하여 경종을 울리는 심정에서 인용해 보았다.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확연히 다른 곡식인데, 눈으로 직접 보고도 분별하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렇게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쑥맥!’이라고 하기도 한다. 숙맥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콩과 보리뿐이겠는가? 상식과 비정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과 평상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진시황제가 죽고 2세인 호해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곁에는 환관인 조고가 있었다. 간신 조고는 진시황제의 가장 우둔한 아들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시험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신하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사슴(鹿)을 호해에게 바치며 말(馬)이라고 했다.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자, 조고는 신하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신하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침묵파’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못 말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을 선택한 부류였다.

또 한 부류는 ‘사슴파’였다. 분명 말이 아니었기에 목숨을 걸고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한 신하들이었다. 마지막 한 부류는 ‘숙맥파’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슴이라고 하는 순간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슴과 말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숙맥들만 남고 모든 신하는 죽임을 당했다. 바야흐로 숙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숙맥의 시대는 채 몇 년도 가지 못했다. 더는 숙맥으로 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봉기해 결국 진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사마천의 ‘사기’ 중 ‘진시황본기’에 전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나온 배경이다. 이성(理性)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고, 변명이 사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숙맥의 시대라 하고, 이런 시대를 숙맥의 난(亂) 이라고 정의한다.

숙맥의 난맥상은 그 어떤 혼란의 시대보다 폐해가 크다. 상식은 몰락하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도술(道術)이 성행한다. 소신대로 목숨을 걸고 진언하는 충신이 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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