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질’에 대한 철학적 관심
아침을 열며-‘질’에 대한 철학적 관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22 16: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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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질’에 대한 철학적 관심

21세기도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의 학문은 어떠한가? 특히 철학은 어떠한가? 우리의 삶에서 ‘돈’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다면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지위’에 대한 관심? 그것도 분명 있기는 있다. 그 둘을 합친 이른바 ‘부귀’에 대한 생적인 관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 증언은 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발언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강력한 그 무엇이다. 그 누가 그걸 부인하겠는가. 그 누가 그것에 저항하겠는가?

그러나 저들은 그런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부처와 예수도 그런 관심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 넷은 이른바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뭔가 모순이 있다. 인간들은 사실상 부귀에 한평생을 매달리면서도 그것에 반대한 이들을 추앙한다. 이 모순된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간들은 분명 부귀를 추구하는 욕망의 존재이지만 그 욕망이 우리에게 완벽한 만족 내지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과는 다른 방향이 우리들의 삶에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방향에 이른바 ‘가치’의 세계가 있다. 거기에 저 유학이니, 불교니, 철학이니, 기독교니 하는 것도 존재한다. 숭고한 세계다. 그런 것이 우리 인간에게, 우리네 인생에 ‘질’이라는 것을 얹어준다. ‘질’은 ‘가치’라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저 성인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정신적 질’ ‘인생의 질’ 그런 이야기는 따로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질 내지 가치와 관련해 가까이서 할 수 있는 이야기, 해야 하는 이야기는 있다. 우리들의 일상적 삶에서, 특히 국가적-사회적-시민적 삶에서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할 가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질의 문제영역’이라고 불러도 좋다. 우리가 일상세계에서 실제로 영위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게 우리의 필생의 과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실제 현실은 비교적 (아니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질’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별로 (아니 거의) 없다. 생각의 질, 언어의 질, 행동의 질, 물건의 질, 건축의 질, 제도의 질, 교육의 질, 정치의 질, 인간의 질, 거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저질이 너무나 많고 그 저질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하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질을 떨어뜨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저질로 살 작정인가!

우리는 삶의 모든 장면에서 ‘질적인 고급’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값비싼 명품으로 온몸을 두르더라도 그것이 즉 그 옷이나 모자나 시계나 반지나 목걸이나 가방이나 신발이나 자동차나 아파트 등이 그 사람을 ‘고급’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저 성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런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철인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까짓 돈도 안 되는 것...”하고 비웃는다면 그거야 할 말 없다. 염라대왕이 나중에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한, 지금 여기서 살면서 맞닥뜨릴 ‘질적인 고급’에 대한 지향은 포기할 수 없다.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그 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옳은 것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어떤’의 구체적 내실이다. 이 세 가지(이른바 진선미)만 갖추어져도 우리의 이 세상은 살만한 것이 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우리는 생활 주변의 모든 항목에 대해 줄기차게 ‘어떤’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질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과 더불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인품으로서 어떤 시민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과연 고급스러운가, 혹은 저질스러운가? 특히 부와 지위를 가진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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