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7)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29 15: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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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17)

▶당나라 최고의 명군(名君)이자 실질적인 건국자 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599~649·50세. 재위:626∼649·23년):당나라 제2대 황제로 최고의 명군이자 실질적인 건국자이다. 그 이름의 뜻은 제세안민(濟世安民), 즉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이다. 신라와 함께 연합하여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겠다고 나섰다. ‘하늘 아래 오직 나 이세민(李世民)만이 천자(天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침공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구려에게 패한 후 태자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고구려를 다시는 침공하지 말라.”

▶바다 속에 무덤(해중릉:海中陵)을 남긴 신라 30대 임금 문무왕(文武王:626~681·55세. 재위기간:661~681·20년):신라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명왕후(文明王后) 김씨이다.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완수하였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삼국통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가 경제는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해 오자 나라의 뒷일을 걱정하면서 관습대로 매장을 하게 되면 릉을 만들면서 백성들을 수고롭게 할 뿐 자신의 영혼을 되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짐이 숨을 거두면 불교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 상복을 입는 법도는 정해진 규정을 따르되 장례의 절차는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城)과 요새(要塞), 주(州)와 현(縣)의 세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과 격식에 편치 못한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포고하여 나의 뜻을 알리도록 할지니, 주관하는 이는 시행할지어다. 내가 죽어서도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킬 것이다.” 유언에 따라 화장한 후 그 뼈를 지금의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감은사지(感恩寺址) 앞바다에 있는 동해대왕암에 안장(海中陵)함에 동해의 용(龍:東海之龍)이 되어 왜병(倭兵)의 침입으로부터 신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충정의 교훈을 후세인들에게 남겨주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문무대왕의 무덤은 바다 속에 안장된 해중(海中)왕릉이다. 1967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이 글을 읽은 후 필자는 현장을 답사해 보기도 했다.

▶신라 34대 효성왕(孝成王:706~742·36세. 재위:737~742·5년):성은 김(金). 이름은 승경(承慶). 병치레가 잦았던 효성왕을 위해 릉(陵)을 만들고 있었는데 임종 직전 “짐의 유골을 화장하여 동해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하자 이 릉(陵)은 짓다 만 채로 남겨지게 되었다. 유언에 따라 법류사(法流寺) 남쪽에서 화장한 후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 법류사는 경상북도 경주에 있던 절인데, 신라 선덕왕 때 승상(丞相) 김낭도가 어렸을 적에 몸이 굳어 뻣뻣하여지고 말도 하지 못하므로, 그의 아버지가 법류사 승려 무명을 청하여 경(經)을 읽게 하였는데, 큰 귀신이 작은 귀신을 시켜 철퇴로 승려의 머리를 때려죽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 37대 선덕왕(宣德王:?~785·재위:780~785·5년):성은 김(金), 휘(諱)는 양상(良相). 선왕(先王)인 36대 혜공왕(惠恭王)이 사치와 음탕한 생활을 일삼아 궁중의 기강이 문란해져 난군(亂軍)에 의해 피살되자 대를 이었다. 당나라에 조공(朝貢)을 바쳤으며, 당의 덕종(德宗)이 검교대위계림주자사영해군사신라왕(檢校大尉鷄林州刺史寧海軍使新羅王)의 봉작(封爵)을 주었다.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과인은 본래 재능이 없고 덕이 적어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를 피할 수 없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있는 동안 해마다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백성의 일상생활이 곤궁하여 졌으니, 이는 모두 짐의 덕이 백성들의 소망에 부합되지 않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항상 왕위를 물러나 궁궐밖에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이 그때마다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갑자기 병이 나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죽은 후에는 불교의 법식대로 화장할 것이며 유골은 동해에 뿌리도록 하라.” ‘삼국사기’·‘증헌문헌비고’에 의하면 신라왕들 중에서 화장을 치룬 임금은 4명인데, 제30대 문무왕·제34대 효성왕·제37대 선덕왕·제38대 원성왕이다. 화장을 한 이 네 왕들의 혼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후손들을 보살피시어 오늘날의 번성을 누리고 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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