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연등을 밝히며
진주성-연등을 밝히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30 16: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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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연등을 밝히며

절집 들머리마다 오색찬란한 연등이 줄지어 매달려서 부처님 오심을 봉축하는 불심이 넘실거린다. 세상 어디에도 어둠이 없게 밝히려는 자비의 등불이다. 마음도 밝히고 지혜도 밝히자는 거룩한 불심 앞에 성스러운 신심이다. 봉축의 정성이 온 누리에 가득하여 저마다의 간절함이 뜻과 같이 이뤄지기를 빈다.

곳곳에 내걸린 연등을 보며 모처럼 가져보는 마음의 여유를 얻게 했다. 남을 위한 발원의 발심을 일게 하여 마음도 한결 가볍다. 팍팍한 일상에서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쉽잖은 일인데 누군가가 모두에게 주는 베풂이다. 예사롭게 그러려니 하면 그뿐이겠지만 누군가의 신심이 불심과 닿은 것이다. 사바세계를 위해서다. 언제나 내 욕심에 발목이 잡혀 옆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이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앞만 보고 살기도 바쁜 세상이어서 짬은 언제나 없고 틈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잠시라도 가져보려고 이따금 절을 찾는다.

누가 반기든 말든 상관없이 절을 찾아 촛불도 켜고 향도 피우며 나름대로 예를 갖춰 절을 하며 일상과 부딪치며 생으로 앓던 속도 비우고 실리와의 다툼으로 번번이 상처받은 양심도 달래보곤 한다. 언제나 엄숙하여 경건하게 뒤돌아보게 하여 감사의 절을 한다. 불법이나 법도에는 무지하나, 심신의 청정을 위해 향이 피우고 밝게 보려고 촛불을 켜고 귀를 열려고 종소리를 듣고 머리를 맑히려고 목탁 소리를 듣는다. 산사의 풍경소리가 더 맑게 들릴 때가 있다. 청아한 소리의 여운이 내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왜 여기 있는 것인지, 이래도 되는지, 내 물음에 답을 찾는다.

돌 틈새든 길섶이든 이름 모를 풀꽃도 때맞춰서 꽃 피우며 계절 맞게 열매 맺어 제 앞가림 제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면서 아무 데나 우쭐대고 제 분수도 모르면서 어디에든 껍죽대며 빈 낚싯대 걸쳐놓고 월척이나 탐을 내고, 북데기 힘만 믿고 겁도 없이 외줄 타고, 가슴 차갑게 도리질은 또 얼마나 했는지, 업경(業鏡)에 비춰보면 참으로 기고만장하여 가관일 것이다. 그러고도 천왕문을 들락거리며 불보살 앞에서 함부로 무릎 꿇기를 얼마나 하였으며, 하늘에 두 손 모으기를 또 얼마나 했던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부처님 오신 날 연등에 불을 밝히며 또 한 번 자세를 고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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