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읽기-유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다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읽기-유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5.31 16:4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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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유월, 호국보훈을 생각하다


유월이다. 유월의 달력에는 의병의 날, 현충일, 민주항쟁기념일, 한국전쟁일 등이 들어있다. 그래서 유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애국자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 한 젊은 지인과 호국보훈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놀랍게도 그는 애국심을 보수 꼰대들의 생각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비전 없는 미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라 생각하기엔 그의 주장은 확고했다. 국가를 부정하는 개인주의 사고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왕정 폐지, 교육 독립, 여성해방 등의 개혁을 주창한 영국의 언론인 칼라일은 “애국심은 국가 번영의 영원한 조건”이라 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대는 매일 5분씩이라도 나라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라는 말로 애국심을 강조했다. 반면 니체는 “애국심은 역사를 파멸시킨다.” 했고, 톨스토이는 “애국심은 살인자 양성을 정당화하는 원천”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의 본뜻은 애국이란 이유로 타국을 배척하는 집단 이기주의를 질타한 말이지, 국가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는 국가의 주권을 통해 보호받는다. 애국심은 내가 보장받는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권리에 대한 의무라 해야 할까. 예컨대 내가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범죄를 당하지 않게 보호해 주는 것은 국가가 규정한 법과 공권력이다. 군대 또한 나를 타국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소위 아나키스트들은 사상적으로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기에 애국심도 부정한다. 아나키즘의 관점에서는 법이나 공권력 없이도 공동체끼리 협의를 통해 잘 살아갈 수 있는데, 국가가 개입해서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아나키즘을 채택하고 모든 사람이 양심적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힘의 불균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아나키즘이나 안티내셔널리즘은 현실성 없는 이상일 뿐이다.

현실을 보면 세계는 지금 이 시각에도 국가 간에, 민족 간에 이권의 문제로 수많은 전쟁이 진행 중이다. 전쟁이란 국가든 민족이든 종교든 자신들의 공동체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형태 중 가장 극단적인 최후의 방법이다. 결국 힘이 없는 집단은 짓밟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일당 독재 공산 체제인 북한은 해방이라는 미명으로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어졌다. 이대로가 과연 안전한지 의문스럽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다. 사회 주류 대부분이 전후 세대이다 보니 통일에 대한 열망은 거의 사라졌다. 세월만큼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인류사를 끝없이 거슬러 올라갈 수 없듯,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은 이미 퇴화하였다. 통일이 의미를 잃어가는 만큼 이제 남북은 이념이 완전히 다른 국가일 뿐이다.

한국전쟁 유공자 중 살아계신 분은 어느새 아흔을 넘긴 나이가 됐다. 10년 뒤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 후손들을 위해 제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신 분들이다. 그런데도 애국심을 불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이다. 교육이나 기록물에 의해 배운다 해도 전쟁을 직접 경험한 분들의 아픔은 온전히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여름날 새벽의 총성에 대해, 그 총성의 마지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부끼는 유월만큼이라도 호국영령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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