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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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꽃이 꽃에게 다치는 일이 없고, 풀이 풀에게 다치는 일이 없고, 나무가 나무에게 다치는 일이 없듯이, 사람이 사람에게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꽃의 얼굴이 다르다 해서 잘난 체 아니하듯, 나무의 자리가 다르다 해서 다투지 아니하듯, 삶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행동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사람이 다른 것을, 그저 다를 뿐 결코 틀린 것은 아닐 테지. 사람이 꽃을 꺾으면 꽃내음이 나고, 사람이 풀을 뜯으면 풀내음이 나고, 사람이 나무를 베면 나무내음이 나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사람내음이 날까”

위는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필자의 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하지만 나쁜 환경과 욕망 때문에 악하게 변한다는 것이고, 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악으로 보고 도덕적 수양은 교육을 통한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사람의 본성에 관하여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의 꾸준한 질문에도 딱히 정답이 없듯이, 이 두 학설에 대하여도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성선설’이 다수설인 듯하다.
공자는 명심보감 교우편에서 “착한 사람과 함께 하면 마치 그윽한 향기 풍기는 난초가 있는 방에 든 듯하여, 오래도록 그 향기를 알지 못할지라도 곧 그와 더불어 동화되며, 착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하면 마치 저 생선가게에 든 듯하여 오래도록 그 나쁜 냄새를 알지 못할지라도 역시 그와 더불어 동화될 것이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가 있을 곳을 삼가서 택한다”라고 했으니 인성은 사회적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얼마든지 변화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난무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여 사회적 여건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졌건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그러하지 못한 것은 이기적 사고와 목적을 위한 부당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논리, 현실에 대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성공과 출세지향주의의 편협된 가치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꽃마다 봄이라고 산야들로 찾아와 만물의 안부를 묻는 즈음에,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 계절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하다. 더없이 행복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악하지 않고 살기에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기만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영국작가 루이스 캐럴은 ‘그림자와 본체’에서 “신은 우리에게 악을 보내준 반면, 악을 정복할 수 있는 무기도 보내주었다”고 했으니 그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꽃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듯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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