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유월이 되면
진주성-유월이 되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06 15: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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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유월이 되면

유월이 되면 속울음을 운다. 아무도 없으면 유월이 나를 울게 한다. 아직도 섧다. 이제는 잊었나 하면 그 함성이 들려온다. 잠든 영혼이 되살아난다. 쓰러진 깃발이 다시 일어선다. 향불의 연기도 매캐하다. 삭아도 삭아도 열 번도 더 삭고 스무 번 서른 번도 더 삭아야 할 분이 아직도 남아서 유월이 되면 뜨거운 피로 끓어오른다. 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도 유월이 되면 속을 긁는다. 비우고 비워도 다 비우지 못해서 아직도 섧다. 설워서 서러움 되지 말자며 잊으려 해도 유월의 향불이 피면 더 서러워서 못 잊는다.

거룩한 분노, 숭고한 저항, 아름다운 절규, 우렁찬 통곡, 모두가 하나였던 뜨거운 함성! 이제는 잊어도 좋을 옛이야기가 되었으면 해도, 유월이 되면 되살아난다. 서러움의 꼬리가 길어서 이제는 잊어야지 하면 아스팔트가 달구어지는 또 유월이다. 스쳐 간 바람이었고 흘러간 구름이었다 하면 뙤약볕이 유월을 불러온다. 그 뜨겁던 열기를 가슴에 끓어 붓는다. 못 잊어서 못 잊는 유월이 되면 촉석루 그림자 위에 남강물이 신음한다.

칠암동 대숲이 절규하고 망경동 대숲이 치를 떤다. 비봉산과 선학산이 스크럼을 짜고 망경산을 불러낸다. 창렬사에 향이 피고 호국사의 종이 운다. 의암도 섧게 운다. 유월이 되면 매캐한 내음이 난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는다. 가족들이 볼까 봐 얼른 고개를 돌린다. 늘 미안했고 언제나 미안하다. 유월이 되면 더 미안해진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하고 지금껏 살아왔다. 유월이 되면 목마른 함성이 처절하게 들린다. 가슴이 아려온다. 가족들이 눈치챌까 봐 먼 산을 쳐다본다. 속울음을 운다. 섧고 또 서럽다. 유월이 되면 더 서러워진다. 그래도 내색 한 번 않고 지금껏 살았다.

유월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많다. 가족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늘 보고 싶고 언제나 보고 싶다. 어느 하늘 아래서 분을 삭이고 있는지 가슴이 저려온다. 유월이 되면 더 보고 싶다. 그래도 연락 한 번 못하고 지금껏 살았다. 유월이 되면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아침마다 칠성판을 들쳐 메고 집을 나섰다. 늘 군중 앞에서 확성기로 소리 지르며 오일장도 다녔다. 언제나 목이 메어 목이 쉬었다. 목쉰 소리를 달고 살았다. 유월이 되면 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래도 잊지 못하고 지금껏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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