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11)
맛있는 스피치-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1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14 15:48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
강정희/한국인문스피치아카데미 원장-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테마여행(11)

말하기 능력이 소통의 창문이 될지 벽이 될지는 우리가 어떤 언어로, 어떤 말하기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교류에서 지지받고 협조받기를 기대한다. 협조를 얻으려면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지혜롭고 긴 연설보다 흡입력이 뛰어나다. 자신의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거나 너무 긴장한 탓에 전달이 잘못되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하고 화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청중 앞에서 말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 마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은 백야현상으로 괴로웠던 K씨의 사례를 통해 소통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모회사의 대표로 시, 군의 보조를 받아 농협과 연계하여 농업인들에게 필요한 자신의 제품을 알리고 보급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회를 준비했다. 면사무소 2층에서 ◯◯회사 설명회가 있는 날, 그는 자신의 회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단상 위에 올랐다. 농협 관계자와 농업인들이 강당에 앉아서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갑자기 숨이 멎는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났다. 말을 하려는데 머리가 하얀 백지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백야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말들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몇 분 동안 마이크만 쥔 채 몸이 경직되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뭐하는 것이냐”며 고함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그 길로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의 설명회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그날 오후 K씨는 생각할수록 스스로에게 화가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벽을 세게 쥐어박아 손가락뼈가 골절되어 병원에서 깁스를 했다.

위 사례는 말과 생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몸까지 상하게 만든 사건이다. 말에는 밖으로 향하는 말과 내면의 말이 있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헬마 나르는 “화술이란 객관적인 정보라는 마스크를 쓰고 감정에 호소한다”라고 했다. 감정 표현이 익숙한 사람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 즉 밖으로 향하는 말이 자연스럽다. 밖으로 향하는 말을 갈고 닦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내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도 모를 때 말에 일관성이 없고 생각하는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 즉 백야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그 원인은 대개 머릿속에 내면의 말이 흘러넘치거나 마구잡이로 쌓여서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 있다. 말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릿속 생각을 말로 바꿔 밖으로 향하는 말을 능숙하게 잘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인 내면의 말을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사례로 들은 K씨는 백야현상 사건 이후 회사를 접을 생각도 하고 자괴감으로 며칠 지내다가 필자의 아카데미로 찾아왔다. 첫 인상은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 누가 봐도 잘생긴 외모와 호감형 얼굴이었다. 손엔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1시간 가량 상담을 통해 황당했던 경험담을 듣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셨고 어릴 때부터 그에겐 엄격한 아버지였다. 권위를 중시하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한 적 없는 그는 감정표현이 적고 말이 없는 아들이었다. 사실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문제는 그들의 언어에 있지 않다. 인정과 동의를 얻지 못한 대화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생각이 말을 만든다. 단기간에 빠르게 말솜씨를 기를 수는 없지만 내면의 말에 귀 기울여 자신의 사고를 심화하고 이것을 밖으로 전달하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흐름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체득되었을 때, 원하던 표현을 전달력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K씨는 꾸준한 훈련과 연습으로 얼마 전엔 총동창회 사회 진행을 멋지게 본 사진과 영상을 보내왔다. 우리가 말하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일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돌보고 인간관계를 잘 해보겠다는 자신과의 다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