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그들’이 있는 풍경
아침을 열며-‘그들’이 있는 풍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15 16: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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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그들’이 있는 풍경

살아오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특별한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른바 ‘시대의 풍경’ 그 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것이 시대의 풍경이라는 사실은 실은 대개 그들이 그 장면에서 사라졌을 때, ‘이었다’는 과거형으로 되새겨지며 우리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박정희나 3김, 이병철-정주영-구인회-최종현-신격호…, 김수환-성철-조용기…, 박종홍-안병욱-이어령-박경리…, 문희-윤정희-남정임…, 신영균-신성일-송해…, 등등 엄청나게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눈앞에, 귓가에 어른거리던 그들의 이름과 모습과 목소리가 어느샌가 가을철 매미처럼 뚝 끊어지고 시간의 흐름에 묻혀버렸다. 호불호 시비선악을 떠나 그들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어느 나라인들 그런 게 없으랴. 어느 시대인들 그런 게 없었으랴. 한때는 저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도 그런 생생한 풍경의 일부였을 것이고, 진시황이나 네로나 히틀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히틀러나 모택동이나 김일성의 경우는 아직도 그 연설의 음성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역시 시대의 풍경 그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문득 ‘지금’을 생각해본다. 저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우리의 눈앞과 귓가에는 여전히 이름들과 얼굴들과 음성들이 보이고 들린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인들은 일단 배제하자. 칙칙한 풍경이다. 경제계에서는 저 창업주들의 뒤를 이은 샛별들이 여전히 창공에서 반짝거린다. 이재용도 정의선도 구광모도 최태원도… 그런 찬란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최고의 풍경은 연예 세계다. 별들이 은하수처럼 많아 BTS와 김은숙 정도만 언급하기로 하자. 학계의 풍경은, 특히 인문학의 세계는 칠흑같은 밤이다. 한때 그렇게 떠들썩하던 김용옥도 요즘은 좀 고요하다. 그 대신 대원로 김형석의 이름이 여전히 풍경의 일부로 반짝인다.

그중에 ‘법륜’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이 ‘지금’이라는 이 시대의 풍경에서 빛나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틱톡에서도 우리는 이분의 얼굴과 음성을 아주 자주 접하게 된다. 비슷한 또래라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분을 우리 시대의 ‘풍경’으로 손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좀 과장하자면 마치 생불 같다. 그의 소위 ‘즉문즉설’을 여러 개 접해봤는데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정확히 짚어내고 맞춤형 답을 제시하는 게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천재적 능력의 소유자다. 이분은 제대로 불교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종단이나 사찰의 불교가 아니라 부처의 불교다. 한때 저 법정이 글로 했던 역할을 지금 이 법륜이 말로 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질문자가 스스로 겪고 있는 ‘고’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그게 저 부처의 자비심과 다를 바 무엇인가.

특정인과 특정 종교를 굳이 편애하여 띄워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아마 그런 띄워줌에 전혀 관심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민폐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분이 우리의 ‘시대의 풍경’에 현재진행형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동시대인으로서 그런 장면들을 즐기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소중히 하고 고마워하고 가슴에 간직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미 겪어봐서 알듯이 시대의 풍경은 이윽고 변한다. 시나브로 변한다. 이름도 모습도 소리도 언젠가 우리의 눈앞에서, 귓가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아련함으로 현재의 이 장면을 그리워할 것이다. 김수환이나 법정이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듯이.

그런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별빛은 언제나 그것을 쳐다보고 미소 짓는 눈빛을 기다리고 있다. 법륜도 그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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