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인간 상품의 가치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인간 상품의 가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1 16:1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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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인간 상품의 가치

시집 한 권이 배달되어 왔다. 표지를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시인의 방대한 이력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은 모두 받은 것처럼 되어있다. 이런 이력이라면 문단의 거물일 것인데, 작품을 읽어보니 통속적이다 못해 상투적이다. 해당 상을 운영하는 단체의 누리집에서 수상자를 확인해 보았다. 어느 한 곳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알고 보니 그가 받은 상은 개인 또는 동호인들이 만든 이름만 똑같은 모방 상이었다. 얼굴이 화끈했다.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기 위해 그런 사이비 이력을 적은 것이다.

상품의 새로운 브랜드는 차별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생존에 좋은 방법이라 한다. 차별성에 대한 강조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은 자기 PR시대를 넘어 자기 상품화 시대라고 한다. 사람도 하나의 상품이라면 평범하지 않고 새로운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우수성을 극대화하려고 경력을 쌓고 홍보한다.

문제는 광고만 요란하고 물건의 질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역풍을 맞듯, 사람도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을 과대 포장하면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어 신뢰를 잃게 된다. 과대포장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다. 유창한 말솜씨로 자신을 교수, 시인, 낭송가, 인문학자라고 소개했다. 처음엔 지역의 숨은 고수인 줄 알았다. 모든 말이 자신을 치장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명 시인들의 시와 자신의 습작 시를 함께 엮어 마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인인 것처럼 제본해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SNS 동인들이 만든 공인되지 않은 단체의 자칭 시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과대광고에 세뇌되고 있었다. 마치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 같았다. 결정적으로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은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그처럼 자신을 대단한 척 미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도 있다. 지인 P는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항상 주변 사람을 치켜세운다. 그야말로 겸손이 몸에 베인 사람이다. 비록 눌변이지만 도리와 의리를 최우선의 신념으로 여긴다. 어떤 경우라도 남 탓하지 않고 항상 자신이 책임지는, 신뢰와 믿음이 저절로 가는 사람이다.

어떤 이가 좋은 벗이 될 수 있는지 누구나 쉽게 말은 하지만, 의외로 현란한 말에 속는 경우가 많다. 부족한 부분을 갈고닦아 개선하는 일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올리는 일이지만, 과대포장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모래탑을 쌓는 것과 같아 이내 무너지기 쉽다.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필자 역시 자신을 미화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냉정히 평가하면 늘 실수를 반복하는 엉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침묵하거나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욕심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보통 사람을 주창했던 과거 어느 대통령의 말이 이제야 공감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훌륭한 경력이나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좌충우돌 진솔한 실패담을 가진 사람이다. 과하게 미화하는 사람보다 여전히 실패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족하면 갈고닦아 도전하는 보통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공화국, 수필가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문단에서 작품마다 단 한 줄의 이력만 적는 P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 크기를 새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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