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조그맣고 단순한 자아를 위해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조그맣고 단순한 자아를 위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02 15: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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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조그맣고 단순한 자아를 위해

풍경소리도 목탁도 안부도
가뭇없이 사라진 영은사지

나는 기약 없이 길을 가듯 절터를 수없이 돌았다. 그림자만 남은 절 앞에 험상궂게 멍하게 서 있는 장승. 아직 내 길을 찾지 못한 나를 나무란다. 길 가운데 홀로 서 있다고 손가락질하지 마라.

눈 내리고 산이 길을 덮네. 눈송이 온몸 차갑게 적신다. 사소한 것들과 함께해 온 나는 여태 혼자 되는 게 두려웠다.

지금도 나는 길을 걷는다.
눈아, 내려라
조그맣고 단순한 내 자아를 위해

(류천의 ‘석장승’)

장마철이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진주의 마스코트 ‘하모’도 비를 맞으면서 외부인들에게 진주의 인지도를 높이며, 이미지와 평판을 관리하고 있다. 마스코트는 지역의 특성이나 상징을 담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친근하고 즐거운 이미지를 전달한다. 하모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게 하며,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오늘은 2023 ‘청천문학’에 발표된 류천 시인의 ‘석장승’을 소개한다.

류천의 본명은 류준열이다. 수필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오다가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산청군 시천면 천평리에서 태어나 덕산중학교, 대아고등학교,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단성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류준열이 있으면 그의 고등학교 친구인 손국복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합천교육장을 거친 그는 합천 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두 시인은 소문 난 골초다. 담배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죽이 잘 맞다. 둘의 대화는 화기애애하면서 뿌리 깊은 우정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

작품 ‘석장승’은 류 시인이 함양 백전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는데, 백전의 ‘영은사지’로 추측된다. ‘풍경소리’ ‘목탁’ ‘영은사지’ ‘절터’ 등의 시어를 시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장승’은 이정표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하모’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스님이 기거하던 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석장승’이 ‘절터’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 그림자만 남은 절 앞에 험상궂게/ 멍하게 서 있는 장승/이 / 내 길을 찾지 못한 나를 나무란다/ 하고 화자는 ‘자아’ 성찰을 위해 ‘지금도 길을 걷는다’라고 말한다. ‘길’은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사소’하면서 ‘조그맣고 단순한’ 곳에 있다고 류준열은 말하고 있다.

최근 류준열, 손국복 시인이 대아고등학교 출신 문인들을 모아 가칭 ‘오민문단’을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상옥 교수를 비롯하여, 강외석, 김륭, 양곡, 김남호, 장삼식, 이희규, 리창근, 이기성, 윤덕, 윤홍렬, 강동기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길을 트고 있는 두 시인은 담배를 피우면서 아니면 막걸릿잔을 건네다가 ‘오민문단’을 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빗방울도 모여서 물꼬를 트고 길을 낸다.

류준열은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중산리에 뜻이 맞는 문인들과 천상병 ‘귀천’ 시비를 세웠고, ‘천상병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요즘도 천상병 문학제추진위원장을 맡아 해마다 추모제와 ‘산천재 시화전’을 열고 있다. ‘천석들이 종’과 천평들을 보면서 자란 그의 품은 넉넉하다. 참고로 역대 천상병문학상 수상자는 문정희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이 있다.

류준열은 진보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으며 사회를 폭넓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인들과 힘을 모아 ‘오민문단’ 등 의미 있는 또 다른 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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