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단상-은퇴 후 지리산 산골에 온 이유-노란 숲속의 두 갈래 길
전원생활의 단상-은퇴 후 지리산 산골에 온 이유-노란 숲속의 두 갈래 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13 16: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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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
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은퇴 후 지리산 산골에 온 이유-노란 숲속의 두 갈래 길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우리에게도 너무도 잘 알려진, 수능시험에도 출제가 될 정도로 평범한 소재로 서정적 아름다움을 승화시킨 유명한 시다. 대학 교양 영어 시간에 교수님이 소개하여 원문을 달달 외우고 다닌 기억이 난다. ‘한 사람이 가을날 숲속을 걷다 두 갈래 길을 마주했다가 고민 끝에 사람이 적게 지나간 길을 택했고, 이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내용이다. 물론 긍정적이며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중략--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이 시의 마지막 한 소절이 여태 살아오는 동안에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인생에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을 때 이 소절이 주는 의미와 메시지를 생각하고 자연스레 선택과 집중에 주저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누구나 순간순간 선택의 강요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닌 편한 길도 있을 것이고 가지 않은 거칠고 가시덤불의 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많이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 적은 사람들이 가는 길, 다소 모험적이고 혁신적이며 개척적인 길을 선택해 왔음을 인정하게 된다.

익숙한 일상적인 것에 안주하기를 싫어하고 독특하고 독립적인 길을 선택해 왔기에 오늘의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성공과 만족’이 남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충실한 삶이었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선택의 길이었다. 우리에게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맞춰져서 행동하는 대신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오랜 친구를 그의 모친 문상에서 만났다. 그가 어렵게 내게 하는 이야기는 “지리산 골짜기로 간다는 것에 걱정스러웠고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으니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정정해 주어서 함께 웃었다. 외진 농촌 산골로 오게 된 선택은 나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주위 지인들에게는 무척 염려와 걱정을 주었나 보다. 그들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은퇴 후 살 만한 곳,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고 찾고 있던 중에 지인이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지리산을 등에 지고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로 하동 악양을 배경으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여러 에피소드(episode)로 이어진다. 토지의 배경이 되기도 한 평사리 들판을 떠올렸지만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서부 경남의 끝자락인 곳이다.

그해 가을 하동 악양을 여행하기로 아내와 길을 나섰다. 악양에서 청학동으로 가는 회남재 산길을 꼬불꼬불 한참이나 올라 온 곳에 비밀스러운 보석 같은 한 주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대가 적선해야 한다는 남향집에 계곡이 옆에 붙어 있고 멀리 구재봉과 섬진강이 흐르며 지리산 형제봉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이었다. 단번에 “아..여기로구나, 이곳이야.” 선언하고 주저함이 없이 운명처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한 편의 시 한 소절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며 평범하지 않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을 인도하였듯이 한 권의 책이 보다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해답을 주어서 쉽지 않은 자연 속의 삶을 선택하게 된 원인 제공이 되었다.

일평생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 어려움과 두려움,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가 앞서겠지만, 언제나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배워가며, 알아가는 성취의 기쁨과 새롭고 다른 것들에 대한 설렘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려 고(故) 로버트 프로스트와 악양에 살고 있는 공지영 작가, 책을 선물한 지인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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