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트로이 전쟁 같은 디카시 문예운동
도민칼럼-트로이 전쟁 같은 디카시 문예운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17 15: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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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시인·창신대학교 명예교수
이상옥/시인·창신대학교 명예교수-트로이 전쟁 같은 디카시 문예운동

2004년 경남 고성을 중심으로 디카시 지역문예운동이 펼쳐져 지금은 디카시가 K-리터러처로 해외로까지 소개될 만큼 확산일로에 있다. 내년이면 디카시 문예운동 20주년이 된다. 한국디카시연구소와 한국디카시인협회에서는 20주년 기념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디카시 문예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는 디카시 전문지 계간 <디카시>도 올 여름호로 통권 46호이다.

이 잡지는 2006년 6월 1일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 창간으로 시작됐다. 무크지 창간 발행인 겸 편집인을 필자가 혼자 맡은 1인 잡지였다. “디카시는 시적 형상의 자연이나 사물의 표정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시라는 이름을 달아주는 것이다. 디카시는 사진과 문자로 구성되는데, 사진은 시적인 형상이고 문자가 바로 그 이름인 것이다. 다시 말해 디카시는 언어 너머의 시, 곧 날시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문자 재현한 시다.” 이것은 창간사 일부이다. 디카시에 대한 기본 개념이 창간사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 창간호에 이어 2006년 무크지 2호를 발간하고 2007년 겨울 반년간 <디카시>로 제호를 변경해 최광임 시인 등의 편집진도 구성해서 정기간행물 시대를 열었고, 2016년 봄호 통권 17호로 계간 <디카시> 시대를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8년부터 고성군의 지원으로 매년 경남고성디카시페스티벌을 열며 2016년부터는 국제페스티벌로 승격했다. 2009년 제2회 경남고성디카시페스티벌 심포지엄에 김종회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며 디카시 문예운동에 본격 참여를 계기로 김종회 교수, 최광임 시인 등과 에콜을 형성해서 디카시 문예운동의 새 역사가 씌어졌다.

디카시는 순수 문학장르를 넘어 문화콘텐츠로도 활용되고 있다. 각 지자체나 문화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도 공명선거 참여 캠페인으로 디카시를 브랜드로 활용한다. 해외에서도 한글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K-리터러처로 각광받는다.

디카시 문예운동은 겉으로는 순풍에 돛 단 것처럼 보이지만, 숱한 역풍에 노출되기도 했다.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디카시 문예운동의 현장에서 느끼는 소회는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오디세우스를 상기하게 할 만큼 격렬한 것이었다. 지난번 경상국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이형기문학제 시상식 식전 특강에서,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진주에서 나왔고 대학 강단에 첫발을 내디딘 것도 진주교대여서, 진주는 제2의 고향이라며 디카시 문예운동 과정을 거론하며 오죽하였으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온갖 역경을 거쳐 고향 이타카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의 심정과 같다고까지 말했을까 싶다.

트로이 전쟁은 역사의 유물로 남아 있지만 디카시에 있어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자 미디어의 산물인 문자시 입장에서는 디지털 멀티미디어의 산물인 디카시가 도무지 시로 납득이 안 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쟁투라면 디카시는 문자 미디어 제국과 디지털 미디어 제국의 전쟁이라 할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지만 디카시의 쟁투는 아이러니칼 하게도 문자시와 디카시가 서로 윈윈하는 게임이다.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명제에서 문자 제국에서는 디카시를 수용하기 난색을 표하는 것이지만, 이미 언어가 멀티언어로 확장되는 디지털 제국의 도래로 디카시는 시의 카테고리를 확장함으로써 시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난해한 문자시로 말미암아 떠난 독자들을 다시 시로 돌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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