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4)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24 16:2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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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4)

▶몽골제국의 칸으로 유럽의 전설이 되었던 쿠빌라이 칸(忽必㤠汗:Qubilai Qa’an:1215~1294·79세.재위:1260~1294·34년):칭기즈칸의 손자이다. 본명은 쿠빌라이(Qubilai·한자:忽必烈), 묘호(廟號)는 세조(世祖), 시호(諡號)는 성덕신공문무황제(聖德神功文武皇帝), 존호(尊號)는 헌천술도인문의무대광효황제(憲天述道仁文義武大光孝皇帝), 칸호는 세첸 카안(Secen Qa’an:薛禪汗)이다. 1271년 몽골제국의 국호를 유학에서 따서 대재건원(大哉乾元)의 약칭인 대원(大元)으로 개칭하고 대도(大都:현재의 베이징시)를 도읍(都邑)으로 정하였다. 1276년 2월 4일 남송의 수도 임안을 점령한 뒤 1279년 3월 남송을 멸망시키고 금나라와 거란족의 잔당을 토벌하였으며, 고려를 부마국으로 편입하고, 태국·캄보디아·자바섬을 원정하였으며 베트남 북방까지 영토를 확장시키고 64세 때 몽골제국의 칸으로 즉위한다.

그는 중앙아시아 출신 등 다양한 종족을 실력 위주로 채용하고, 실크로드를 정비, 수호하였다. 서역에서 오는 문화를 중시하였으며,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다. 몽골제국과 중국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에 의해 쿠빌라이 칸은 유럽의 전설이 되었다. 또 한편, 칸에 즉위하기 전 자신을 찾아온 고려 원종과 모종의 동맹 관계를 맺었고 그의 아들인 충렬왕을 사위로 맞으면서 고려와 특수관계를 맺었다. 그는 한때 고려와 연합해 일본을 정복하려 했으나 두 차례 모두 태풍으로 실패하고, 아리크 부케와 카이두를 비롯, 반란에 직면했다. 여진족은 그를 호필내(呼必賚)라 불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고 기술은 끝이 없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도 반드시 방법이 있음을 굳게 믿어라’, ‘아무리 하찮은 적이라도 우리와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말라. 내가 최고라도 자만하지마라’, ‘옆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보며,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라’, ‘세상을 살되 한 뼘이라도 더 넓게 살고, 사람을 사귀되 한 명이라도 더 사귀며, 기술을 배우되 한 가지라도 더 배워라’, ‘상대가 강하면 너희를 바꾸려 노력해야 할 것이며, 너희가 강하면 상대를 바꾸어라.’

그가 남긴 유언은 “우리 할아버지 칭기즈칸께서는 벽돌집에서 농경민족과 어울려 정착해 살면 그때가 곧 할아버지께서 세우신 몽골제국이 망하는 날이라고 하셨다. 거란족과 여진족은 비록 유목민이었지만 불행히도 할아버지 칭기즈칸의 훈계를 듣지 못해서 마지막에는 한족 돼지처럼 게으른 사대부 집단으로 변했다. 금나라의 마지막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너희도 잘 알 것이다.

이 조카는 전쟁을 할 줄 모른다. 군신유의(君臣有義)니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니 남녀유별(男女有別)이니 하는 말이나 주워섬기면서 손을 손으로 쓰지 못하게 하고, 발을 발로 쓰지 못하게 하며, 머리를 머리로 쓰지 못하게 하고, 가슴을 가슴으로 쓰지 못하게 한다. 그저 황후장상(皇后將相)은 씨가 있는 것이니 체념하고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한다. 남송(南宋)을 말아먹은 사대부란 것들은 유학(儒學)이란 묘한 것을 자기들끼리만 배우고 익히는데 따지고 보면 세도를 지키려는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네 사대부끼리 자리를 나누어 먹고, 적당히 백성을 나누어 고혈을 짜먹으려는 수작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내 후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군대를 잘 통솔할 수 있는 자손이 대칸의 자리에 앉아야 할 것이다. 황금씨족들은 반드시 칭기즈칸의 자손 중 가장 유능한 인물을 골라 몽골제국의 대칸으로 선출해야만 한다. 장자(長子)든 막내든 손자든 사촌이든 그런 것은 따지지 말라. 몽골제국이 앞으로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말라. 나의 할아버지이신 칭기즈칸께서 세우신 몽골제국은 오로지 힘으로 지키고, 전통적인 유목정신으로 이어가야 한다.

한 번 떠났으면 고향이라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헤어졌으면 부모라도 그리워하지 말라. 세상을 살되 한 뼘이라도 더 넓게 살고 사람을 사귀되 한 명이라도 더 사귀며 기술을 배우되 한 가지라도 더 배워라. 그러나 우리의 유목정신을 잊고 남만(南蠻)들의 농경사고에 물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내 후손들은 몽골어로만 말하고 몽골 복식(服飾)만 입고, 몽골 음식만 먹어야 한다. 남만은 첩으로도 삼지 말라. 말이 바뀌고 옷이 바뀌고 음식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 절대로 몽골의 풍습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내가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다.” 쿠빌라이 칸이 남긴 명언과 유언…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교훈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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